등록 : 2019.11.24 19:06
수정 : 2019.11.25 02:33
트위터·구글 정치광고 중단
유권자 취향 반영 ‘정밀맞춤 광고’
가짜뉴스 결합해 여론조작 도구로
표현자유 논란 속 규제입법 늘어나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데 그가 전파하는 메시지 중에는 허위 정보가 여럿이다. 2019년 6월 미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그램 ‘데일리쇼’는 뉴욕 등지에서 트럼프의 화제 트위터만 모아서 ‘트럼프 트위터 도서관’ 전을 열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
소통의 걸림돌을 없애고 비용을 낮춰 민주주의를 발달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첨단 기술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가짜뉴스 증가와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선거운동에 이용한 여론 조작마케팅 등의 문제다. 기술과 사용자의 자정 작용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자각은 새로운 법규와 사업모델 변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글은 지난 20일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정치광고’를 금지하는 것으로 광고정책을 변경했다. 오는 12월12일 치러지는 영국 총선에 1차 적용하고, 올해 안에 유럽연합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내년 1월6일부터는 맞춤형 정치광고를 금지하는 정책이 구글의 전 세계 서비스로 확대된다. 앞서 트위터는 11월부터 모든 형태의 정치광고를 금지한다고 발표하고 이를 실행중이다. 트위터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잭 도시는 “정치적 메시지는 사는 게 아니라, 얻는 것이어야 한다”고 정치광고 금지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달초 선거 60일 전부터 모든 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할 때 딥페이크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텍사스주에서도 선거를 앞둔 30일 전부터 정치 목적의 딥페이크 사용을 불법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
2019년 6월 미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그램 ‘데일리쇼’가 개최한 전시회 ‘트럼프 트위터 도서관’ 전에는 사진과 같은 트럼프의 문제성 트위터 내용을 전시했다. 트럼프는 2012년 매우 믿을만한 소식통으로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출생증명서가 위조됐다고 자신에게 얘기해왔다는 내용의 트위터를 올리며, 오바마 대통령에 관한 음모설을 유포한 바 있다.
|
미국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의회는 표현의 자유를 막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조를 통해 표현 자유를 확고하게 보장하고 있는 미국 정치 현실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다. 반발도 있다. 딥페이크 금지 법안에 대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표현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달 조지타운대학 연설에서 “페이스북은 표현 자유를 수호할 것”이라며 정치광고를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표현 자유에 기댄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과 정치광고 금지는 첨단 기술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정밀 맞춤형 광고는 무엇보다 효율적인 마케팅방법으로 인터넷산업을 성장시킨 인터넷의 꽃이자 자양분이다. 금지 대상이 된 정밀맞춤형 정치광고는 광고 대상을 성별, 나이, 우편번호 등은 물론 “25~35세 독신여성으로 폭스뉴스에 ‘좋아요’를 누른 브루클린의 단독주택 거주자”처럼 콘텐츠 이용 취향을 반영해 세분화한 특정집단으로 한정하는 광고다. 허위 정보와 가짜뉴스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는 인간의 심리체계, 인지체계의 취약점을 공격하며 여론을 조종하는 도구로도 활용됐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공유되고 추천된 뉴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는 가짜뉴스였다. 페이스북이 당시 최대 8700만명의 이용자 개인정보를 영국 정치컨설팅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에 불법유출해 트럼프 후보쪽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배경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난 7월 페이스북에 50억달러(약 6조원)의 벌금을 물렸다.
민주주의 체제는 시민들의 합리적 토론과 여론 형성을 기반으로 설계됐지만, 설계 당시 존재하지 않던 첨단 기술이 등장해 새로운 정보 확산과 여론 형성 구조를 지니게 됐으며 이를 악용해 정치·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에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거짓정보도 실시간으로 모두에게 전파되는 구조이고, 딥페이크의 조작영상은 보는 대로 믿는 인간 인지구조를 쉽게 속인다.
트위터 내용을 즉시 공유하는 ‘리트윗’ 단추를 만든 크리스 웨더렐은 올해 초 “우리는 방금 4살 아이에게 장전된 총을 건넨 것과 같다”며 리트윗 버튼을 만든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좋아요’와 ‘공유’ ‘라이브 동영상’을 도입해 누구나 언론 발행인이 될 수 있도록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확대했지만 이 기능은 여론조작 세력과 테러범의 도구로 활용되는 걸 확인했다.
조너선 하이트 미 뉴욕대 사회심리학 교수는 최근 <애틀랜틱> 기고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이런 혼돈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생겨났고, 그의 임기가 끝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셜미디어로 인해 사회 작동방식이 달라졌고 그 결과가 트럼프 당선”이라며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선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러 조건들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