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신속하게 진위 가려라 |
국가정보원 직원이 서울 역삼동에 오피스텔을 잡아놓고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다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야당 인사들은 그제 밤부터 현장에 출동해 밤새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민주당 쪽은 국정원이 지난해부터 수십명의 요원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인터넷상에서 댓글을 달게 하는 등 정치 및 선거에 개입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정원 쪽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고,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흑색선전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금 단계에선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진위를 판단하기는 일러 보인다. 현장의 컴퓨터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공방만 길게 이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이란 점을 고려하면 경찰과 선관위는 불필요한 논란이 없도록 서둘러 진위를 가려야 할 책임이 있다.
민주당 대변인이 제보를 토대로 설명한 내용을 보면, 지난해 11월부터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 담당 부서를 심리정보국으로 격상해 여기에 안보 1·2·3팀으로 명명된 3개의 ‘댓글팀’을 신설했다고 한다. 각 팀에 70여명의 요원을 배치해 개인별 노트북을 지급하고 매일 주요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게재할 댓글 내용까지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아이피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작업은 청사 외부에서 했으며, 이에 앞서 오전에 미리 국정원에 출근해 전날 작업을 보고하고 지침을 받은 뒤 오후에 밖으로 나와서 댓글을 다는 일을 했다는 게 제보 내용이다.
그제 저녁 민주당이 선관위와 경찰에 신고한 역삼동 오피스텔에는 실제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거주하고 있었다. 민주당은 김씨가 11일 오전 10시50분에 출근했다가 오후 1시 반에 퇴근하는 등 최근의 근무행태가 제보내용과 일치한다며 해당 오피스텔에서 댓글 달기 등 불법 선거운동이 이뤄졌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정원 쪽은 어제 낸 해명자료에서 “오피스텔은 직원이 2년 전부터 살던 개인 주거지”라며 “민주당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등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1997년 대선 당시의 북풍공작 등 선거개입 기억이 생생해 국정원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제보와 정황만으로 단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이번 사건을 푸는 길은 간단하다. 김씨가 출퇴근 시간을 둘러싼 의문을 해명하고, 경찰과 선관위가 사생활 침해나 보안이 문제되지 않는 범위에서 컴퓨터 작업 내용을 확인하도록 하면 된다. 국정원이 떳떳하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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