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31 19:22
수정 : 2013.02.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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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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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여)씨가 대선 기간 업무 시간에 특정 누리집에서 야당 대선후보를 비판하는 등의 글을 90차례 이상 쓴 사실이 확인되었다. 국정원 쪽은 ‘종북 성향 사이트와 네티즌들을 감시하는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활동한 ‘오늘의 유머’는 누리꾼들이 사소한 잡담을 즐기는 곳이다. 간혹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글이 눈에 띄는 게 고작이다. 북한과 회합하거나 통신을 꾀하거나 군사기밀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정보기관이 방첩활동을 하기엔 워낙 번지수가 틀렸다. 정보기관의 부적절한 선거개입임은 당연하다. 아울러 국가기관이 시민들의 일상적 표현 영역을 사찰하고도 종북 프레임 뒤에 숨으려는 행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만이 아니다. 박근혜 당선인 쪽의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는 최근 “종북 단체는 대통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공언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서울 노원구청에서 한국사 강의를 하려다가 우파 단체들이 ‘김일성 찬양 교수’라고 몰아세우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우파 단체들이 저명한 남북관계 분야 지도급 인사의 저작을 왜곡해 색깔이 의심스럽다고 공격하는 일도 벌어졌다. 종북을 들먹이며 시민의 자유를 옥죄는 짓이 잇따르니 정말 걱정스럽다.
이런 상황은 지난 한 해 보수세력이 강력한 프레임 싸움을 펼쳐 주도권을 움켜쥔 결과다. 발단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 시비였다. 애초에는 경선이 총체적 부정이냐, 관행적 부실 관리냐가 쟁점이었고 여기에 당내 회의장 폭력, 계파 패권주의, 분열주의 등의 쟁점들이 덧붙었다. 후진적 정치문화를 드러낸 사건이지만 쟁점은 그것대로 옳고 그름을 가려줘야 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본래의 쟁점은 제쳐두고, 색깔몰이로 논점 바꿔치기를 했다.
색깔몰이는 한 놈만 찍어서 패고, 다른 사람들은 겁이 나서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악마 만들기’ 원리에 터잡고 있다. 공포심을 조장하고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1987년 미국 의회에서 이란-콘트라 사건 조사 청문회가 열릴 때였다.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안보 담당 보좌관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청문회에서 니카라과 반군 콘트라를 지원하는 미국의 정책이 “잘못임을 알았지만 대통령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다”며 “국방장관이나 유엔대사 등이 ‘너 혹시 공산주의자 아냐?’라고 말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미국 백악관 분위기가 그런데 한국은 오죽하겠는가. 통합진보당 한 세력만을 찍어 집요하게 따돌리는 방식은 효과를 발휘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종북 프레임 때문에 이른바 ‘종북주의적 당권파’ 대 나머지 모든 세력(피디 세력, 평등파 세력, 정당 밖의 시민사회세력에다가 조중동까지)의 동맹·연합이 짜였다고 설득력있게 분석했다. 이런 분열 구도는 야당의 대선 패배에도 밑자락으로 작용했다. 가령 문재인 후보는 연평도와 북방한계선(엔엘엘) 문제에서 수세적으로 대응했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할 우리 사회 여론지형이 더욱 기울어지니, 야권 전체가 오금을 펴지 못한 것이다.
마침 통합진보당의 김미희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잃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총선 재산등록 때 990만원을 빠뜨린 게 주된 문제인데, 1억8000만원을 누락시킨 다른 국회의원이 무죄를 받은 것에 견줘도 가혹한 야당 탄압이라고 김 의원 쪽은 주장한다. 비록 정당이 달라도 최소한 야당 하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걱정해줄 법한 일이다. 그런데도 관심을 보이는 이가 적다고 한다. 여기에도 종북 프레임에 따른 분열 기제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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