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22 20:35
수정 : 2013.04.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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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22일 오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송파서 수사과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권 과장은 지난 19일 국가정보원 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경찰고위층에서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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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 맡았던 권은희 과장 인터뷰
국정원 직원 재소환때 ‘함구령’
기다린 기자들에 아무말 못해
윗선 방해·은폐 양심고백?
사건 담당자로 할 말 있을뿐
열쇳말 4개만 검색, 신뢰 상실
더 말하면 제 직분을 넘는 일
“(언론에) 한마디라도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씨를 재소환했던 지난 1월4일, 경찰청 고위 관계자의 이런 말을 전해들었다. 22일 <한겨레>와 만난 권 과장은 “지난 1월4일 김씨의 소환 조사가 끝난 뒤 언론에 김씨의 인터넷 활동 시간, 게시물의 성격 등을 확인해주려고 했지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해듣고)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김씨에 대한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40여명의 기자들은 평소와 달리 수사 결과에 대해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권 과장은 “(경찰청 고위 간부가) 직접 전화를 걸진 않았지만 주변 동료를 통해서 거듭 이런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최근 경찰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방해와 은폐 시도를 밝히며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행동이 ‘폭로’나 ‘양심고백’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단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느꼈고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앞으로 다른 사건 수사도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필요한 문제제기를 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권 과장이 수사를 맡은 건, 지난해 12월11일이었다.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대선과 관련한 댓글을 쓰고 있다’고 민주통합당이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면서다. 그의 수사 의지는 확고했다. 수사가 한창이던 1월23일 <한겨레> 기자에게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수사 도중 과로로 병원에도 몇 차례 드나들었다.
하지만 권 과장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맞다는 심증을 처음부터 강하게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난해 12월11일 국정원 직원 김씨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 앞 장면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당시 권 과장은 김씨에게 계속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김씨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수사를 거부했고, 민주당 등은 “김씨의 집 문을 강제로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 과장은 끝까지 강제수사를 하지 않았다.
사법고시 출신으로 2005년 경정 특채를 통해 경찰에 발을 들인 권 과장은 당시 대치 상황을 떠올리며 “법적으로 조금만 근거가 있었다면 강제수사를 했을 거다. 그런데 그런 근거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직전 달아올랐던 여론의 비판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권 과장은 국정원 사건 수사 내내 ‘철저’와 ‘공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2월4일 송파경찰서로 전보됐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정원 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게 된 것이다. 최근 그가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도,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 과장이 이끈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지난해 12월14~16일 서울경찰청이 국정원 직원 김씨의 하드디스크를 분석할 때 100여개의 열쇳말을 검색해 달라고 의뢰했지만, 서울경찰청은 문재인·박근혜 등 4개로만 검색을 진행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권 과장은 “빠른 수사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경찰청은 ‘빠른 수사’만 고집했고, 대선 직전 왜곡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수사가 아니라 발표만 빨랐던 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누리꾼들이 권 과장의 용기있는 발언을 응원하는 등 여론의 관심이 커진 데 대해 권 과장은 “나 개인이 부각되면 오히려 내 문제제기 내용이 묻히고, 이상한 논란만 커진다”며 사태의 본질이 흐려질 것을 우려했다.
권 과장은 앞으로 검찰에서 진행될 ‘수사’를 이유로 말을 아끼고 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수사 내용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수사에 영향을 주게 되고 제 직분도 넘어서게 됩니다. 그럴 순 없죠.”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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