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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25 20:17 수정 : 2013.07.01 16:04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5일 오전 인사청문회 이후 처음으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미리 도열해 있던 직원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스분석 남북정상 대화록 공개 파문

‘댓글사건’ 다룰 정보위 열리기 전날
군사작전하듯 공개 ‘기막힌 타이밍’
남재준 원장의 비뚤어진 애국관
공룡조직 보호본능에 ‘국익 훼손’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대화록) 공개 사건은 백주대낮에 벌어진 공공연한 정치개입이다. 음습한 곳에서 공작정치의 하수인 노릇이나 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왜 그랬을까?

모든 조직에는 조직의 생존 논리가 우선한다. 국정원은 1만여명의 인력을 갖고 있다. 1년에 9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쓴다. 거대한 조직이다. 게다가 수장의 뜻에 따라 일사불란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24일 오후 대화록을 갑자기 공개하고 나선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며칠 동안의 국회 상황과 국정원의 동향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윤상현 새누리당, 정성호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0일 오전 6월 임시국회 일정과 관련해 4개 항에 합의했다. 앞의 두 가지가 국정원 관련이었다. ‘전임 원내대표 간에 기합의한 국정원 직원 댓글 의혹 관련 국정조사는 6월 임시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여야는 국정원 개혁을 위한 노력을 즉각 개시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여야는 25일 오전 정보위원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3개월 만에 정보위원회가 열리면 최대 현안인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이 다뤄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국정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였다. 한기범 1차장이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실에 와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대화록을 보여주고 갔다.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국정원은 이날 저녁 ‘정보위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 관련 국정원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보관중인 문서가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니라 공공기록물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의 정청래 간사가 문건은 왜곡된 내용이라고 기자회견을 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해 국회 요청이 있을 경우 적법 절차를 거쳐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공개를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24일의 대화록 공개를 나흘 전에 이미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정원이 대화록을 정말로 공개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야당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도 국정원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도 격랑에 휩쓸렸다”는 표현을 썼다. 새누리당은 문서를 받고 난 뒤 공개 여부를 놓고 우왕좌왕했다.

국정원의 이런 행동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적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1차 기습을 시도해 적의 방어능력을 확인한 뒤 곧이어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한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골수 군인이다. 현역 시절 별명이 ‘독일병정’이었다.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남재준 원장은 ‘문건을 왜 공개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야당이 자꾸 공격을 하니까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직원들의 명예회복도 국익이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의원들이 전했다. 국정원과 군 출신 국정원장, 국정원 직원들의 명예와 사기가 국가이익보다 더 소중하다고 주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행동을 먼저 선택하고 논리를 나중에 꿰맞추면 무리가 생긴다. 국정원이 24일 대화록 전체를 의원들에게 넘긴 뒤 발표한 보도자료는 거짓과 궤변으로 가득 차 있다. 국정원은 ‘여야 공히 전문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원문과 자료를 국회 의결을 거쳐서 적법하게 공개하자고 했다. ‘국론분열 심화와 국가안보 악영향’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 문제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안보를 위태롭게 만든 것은 국정원 자신이다.

남은 문제는 앞으로의 일이다. 국정원이 뭐라고 주장하든,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국정조사 회피 의도와 청와대의 관리 역량 부재, 남재준 국정원장의 비뚤어진 애국관과 어설픈 명예욕, 공룡 조직의 자체적인 보호 본능 등이 어우러져 터졌다. 이 일로 국익이 얼마나 훼손된 것인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당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긴밀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것이다. 가뜩이나 풀기 어려운 남북관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게 됐다. 역사는 이번 사건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한 가지 건진 것이 있다면 이번 사건으로 국정원 개혁의 당위성을 확인했다는 ‘역설’이다. 어떻게 될까? 지켜볼 일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NLL 파문’, 보수에게 국익은 없다 [한겨레캐스트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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