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가 25일 오후에 열린 국회 본회의 도중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새누리 주장 ‘비굴한 정상회담’ 사례들, 대화록에 없어
‘근거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교묘한 거짓말’로 드러나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정상회담 대화록엔) 처음부터 끝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했고,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배신이었다. 내 말이 조금이라고 과장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
새누리당 소속인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은 20일 국정원이 무단 열람시킨 ‘대화록’과 발췌본을 본 뒤 기자회견을 열어 “노 전 대통령이 엔엘엘(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은 물론이고 수시로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드린다’거나 ‘앞서 보고드렸듯이’라는 식의 말을 썼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화록을 함께 열람한 새누리당 소속 정보위원들도 거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지금도 가슴이 많이 뛴다”(조원진 의원) “부끄럽고 마음이 아프다”(조명철 의원)며 노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격을 훼손했다고 통탄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무단 공개한 대화록 전문을 보면 ‘비굴한’ 정상회담이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완전히 왜곡한 거짓말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왼쪽)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사이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새누리당 의원들이 굴종의 대표적 사례로 든 “보고드린다” 또는 “앞서 보고드렸듯이”라는 표현은 103쪽 분량인 대화록 어디에도 없다. 대신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42쪽)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지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이 발언을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6자회담에 관해 ‘보고’하고 난 뒤 그런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해했다는 뜻으로 해석해 부각시킨 것이다.
하지만 대화록을 보면, 김 위원장은 1차 회담 도중 6자회담에 관해 이야기하다 김계관 6자회담 북쪽 수석대표를 불러 함께 ‘보고’를 들어보자고 노 전 대통령에게 제안한다. 당시 김계관 대표가 6자회담을 마치고 정상회담 전날 저녁에 귀국한 탓에 김 위원장도 “아직 전문으로만 봤지” 대면 보고는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김 대표는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양쪽 정상이 보는 앞에서 6자회담 경과와 미-북 막판 줄다리기 협상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 뒤 두 정상은 남북 경협, 개성공단, 엔엘엘 문제 등을 더 논의했다.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국방회담이라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말씀해주신 데 대해서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이른바 ‘6자회담 보고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회담 흐름상 노 전 대통령의 ‘보고 감사’ 발언은 김계관 대표를 불러 자신에게도 보고하게 해준 데 대한 인사이지, 자신이 김 전 위원장에게 보고한 것에 감읍해 한 말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이런 대화가 오갈 때까지 6자회담에 관해선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노무현 굴종’ 주장은 앞뒤 맥락을 거두절미한 채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 교묘하게 왜곡·편집한 결과인 셈이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25일 “서상기 위원장과 정문헌 의원은 자신의 말에 책임지고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공박했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국정원 파문’, 보수에게 국익은 없다 [한겨레캐스트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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