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연세대 교수(맨 왼쪽부터) 사회로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관련한 긴급 좌담을 하기에 앞서 도서관 1층 전시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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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화록’ 무단공개 파문
정상회담 배석자 긴급좌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24일 무단 공개했다. 이는 지난해 대선 때부터 불거진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넘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관여와 대통령 기록물관리법 위반 사건으로 일파만파를 낳고 있다. 이번 무단 공개의 문제점과 당시 정상회담과 관련한 쟁점들을 따져보기 위해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사회로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 실장이 참여한 긴급 좌담을 열었다. 문 교수는 당시 정상회담의 특별수행원이었고, 이 전 장관과 백 전 실장은 정상회담 당시 배석자들로 회담 전 과정을 지켜봤다. 이 좌담은 25일 오후 1시50분부터 1시간 동안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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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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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대승적 목표 희생시킨
‘파우스트’의 악마적 거래와 같아 문 정상회담이 끝나고 11월27일 김장수 국방장관이 평양에서 국방장관 회담을 할 때 노 전 대통령이 현 국가안보실장인 김 장관에게 엔엘엘에 대한 지침을 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백 국방장관급 회담이 열리기 전에 남북 장성급 회담이 먼저 있었습니다. 우리 정부 입장은 거기서도 공동으로 평화수역을 만드는데 엔엘엘을 기점으로 해서 등거리 등면적 원칙을 제시했죠. 그것 때문에 합의가 안 됐고, 그다음에 국방장관급 회담에서도 정부의 입장은 하나도 변하지 않아 국방장관급 회담에서는 엔엘엘 문제에서 구체적 성과를 못 내지 않았습니까. 그 후속조치만 보더라도 참여정부는 정상회담 이후에도 소위 엔엘엘에 대한 입장이 하나도 변화하지 않았다는 게 확인된 거죠. 문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굴욕적인 저자세를 본 적 없다”, 윤상현 원내 부대표도 “얼마나 저자세였나. 남북관계 바꿔야 한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이 아무리 눈을 뒤집고 봐도 우리가 저자세·굴욕 외교를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대일과 대미 외교를 하기 위해 남북이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하는 입장이 분명했던 것이구요. 남북이 함께 노력해서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얘기한 것이지 다른 게 아니거든요. 특히 해주공업단지 개발이라든가 조선산업단지 개발은 오히려 북을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걸 해야 남북간의 평화도 이뤄지고 북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납득시켰던 것입니다. 다만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협상할 때 전술적으로 어떤 용어를 쓰거나 어떤 태도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남북간 회담 때도 북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명들을 하려다 보니 그런 인상을 줄 수 있지만 문건을 다시 봐도 저자세·굴욕 외교였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문 개념계획 5029를 미국이 작전계획으로 만들기 원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그걸 안 했다고 북쪽에 자랑스럽게 얘길 했습니다. 그래도 한-미 동맹이 중요하고 김 위원장이 이른바 ‘적국’의 수장인데 그 앞에 가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비판도 있거든요.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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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론 노 대통령이 먼저 말해
군사충돌 막기 위한 오랜 구상 백 작계5029에 대한 얘기는 이미 정상회담 이전에 국내에서 논란이 됐고 정리가 된 사안입니다. 5029는 북한이 소위 급변사태를 당했을 때 그 문제를 한·미가 공동으로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내용들이거든요.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한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군사적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할 일이 아니니 개념계획 수준에서 끝냈던 거구요. 그것을 김정일 위원장한테 얘기했기 때문에 그게 반미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사실 전후 맥락을 보면 그게 아닙니다. 북쪽의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관계의 발전에 문제가 생긴 게 대한민국이 자주권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을 하거든요. 거기에 대해 우리 정부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예로 든 것에 불과합니다. 문 미국을 보면, 보통 대통령이 참여한 회의 내용을 ‘톱 시크릿’이라고 1급 비밀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정상회담 기록을 원본이 아니고 사본이라고 해서 1급 비밀로 영구보존하지 않고 국가정보원의 2급 비밀로 규정했습니다. 심지어 남재준 국정원장이 이걸 배포할 때 이것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서 공개한 거거든요. 절차상의 하자는 없을까요? 백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회의록의 성격상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국가 정보 담당 부처가 그런 판단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구요.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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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 뒤엎는 국정원의 ‘쿠테타’
박 대통령·국정원장 법적 책임져야 이 통일부의 경우, 남북관계의 문서, 심지어 장관급 회담 문서도 1급 비밀입니다.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정상회담의 문서는 최고의 비밀로 유지되고 분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남북정상회담 문건은 30년간 열어볼 수 없고, 국회 재적 3분의 2의 찬성으로 거의 헌법 개정과 같은 수준의 합의가 있어야 공개합니다. 이 문건이 불과 6년 전 것인데 아무리 국정원 보관 문건이어도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정상회담 기록물과 다를 바 없는 문서를 공개한 것은 탈법을 넘어 위법한 행위죠. 국민이 법적 책임을 끝까지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 누구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 일단 남재준 국정원장의 책임이죠. 이걸 공개한 당사자니까요. 그리고 과연 남 원장이 이걸 대통령 재가 없이 할 수 있었는가 따져야 합니다. 국정원이 대통령 재가 없이 이런 문서를 공개할 수 없다고 보거든요.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결국 남 원장과 박 대통령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북쪽에 주는 함의는 뭐라고 보십니까? 백 북쪽은 특히 최고지도자에 대해선 최고존엄이라고 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대접을 합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 선군정치를 하는 북한 군부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 것은 북한 사회에도 엄청난 충격을 줄 것입니다. 북한 군부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봅니다. 문 회의록 보면 생산 연도가 2008년 1월로 돼 있는데 당시 김만복 원장이 차기 정부를 위해 정리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거든요. 관련 문건이 몇 개입니까. 대통령기록관에 하나, 이번에 공개한 것 하나, 정문헌 의원이 본 것 하나 등 최소한 3개의 버전이 있다는 것인데…. 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정문헌 의원이 본 버전은 이것과 다릅니다. 처음 얘기했던 건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보여줬다는데, 그러면 3가지입니다. 정 의원은 “두 정상이 비밀회담을 했다. 비밀녹취를 했다. 그 내용에 상상할 수 없는 발언이 있었다”는 건데, 그 내용은 이번의 회의록과도 다르고 원본과도 다릅니다. 검찰이 당시 정 의원을 무혐의 처리한 건 정 의원이 주어진 문건을 갖고 얘기한 거라 처벌 안 한 건데 그때 문건의 출처까지 조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백 청와대 지시를 받아서 국정원이 회의록을 작성했는데 녹취와 수기를 중심으로 했거든요. 녹음이 잘 안 된 부분은 수기로 보완해서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걸 청와대에 보고했고 청와대가 한 부 보관했고 국정원은 그것의 부본을 앞으로의 정상회담 참고용으로 뒀다는 것이죠. 공식적으로 얘기할 때는 문건은 딱 2개죠. 하나는 청와대에 보고된 것으로 정부 기록물이죠. 한 부는 국정원에 남겨져 있는데 당시 11월에 작성한 걸로 돼 있습니다. 이번 회의록은 표지에 2008년 1월(생산)로 돼 있습니다. 따라서 국정원이 따로 만든 건지 거기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문 새누리당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엔엘엘을 포기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정상선언은 (군부대가 있던) 개성에서처럼 해군항인 해주를 내준 것 아닌가요? 이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합의에는 해주 경제특구를 만드는 문제가 있는데, 김 위원장이 이걸 주저했던 이유는 해주에 있는 해군기지 때문이거든요. 사실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는 여러 문제가 얽혀 있었던 것이죠. 김대중 대통령 당시 개성공단 만들 때 우리 수도권을 공격할 수 있는 군부대를 송악산 북방으로 옮기고 군사기지를 평화기지로 바꿨습니다. 서해 평화지대 안도 해주를 자유항으로 만들고 군사기지를 평화기지로 만들어 서해 전체를 평화지역으로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세계적인 산업 중심지로 키우려던 원대한 꿈이 있었던 거죠. 백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는 참여정부 들어선 뒤 2003년부터인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서해에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방법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논의됐어요. 문 앞으로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요? 이 이번 국정원장의 회의록 공개는 남북관계를 비롯해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국정원의 ‘쿠데타’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민주화가 이뤄진 이 시대에 과거 정권과 과거 정권이 했던 남북대화를 모두 뒤엎는 일종의 정변이 일어난 겁니다. 이제 나라의 질서와 명예를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기강을 새롭게 잡지 않으면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겠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국회가 이를 막았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남북 당국 회담이 무산되는 과정을 보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이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6년 전 노무현 정부의 엔엘엘 문제나 끄집어내는 이 정부가 어떤 생각 갖고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세번째로 시민사회단체가 목소리를 내서 사회 질서를 세우는 일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백 국정원의 일방적 공개는 우리 국가의 근본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국정원이 이런 중대한 문건을 일방적으로 일반문서화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아주 상식적이면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정부에서, 정치권에서, 학계에서 논의해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더이상 벌어지지 않게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 10·4 정상회담은 남쪽이 얘기한 내용이 거의 100% 반영됐어요. 남이 요청하고 북이 수용한 겁니다. 게다가 정상간 논의에 앞서 사전에 충분히 협의된 것입니다. 문 조작에 가까운 사실을 갖고 남북관계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자체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비극적이고 어리석은 일이 발생한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단기적인 정치 이익을 위해서 남북통일이라는 대승적 목표를 희생시킨 <파우스트>의 악마적 거래에 비유될 만한 사건입니다. 정리 강태호 최유빈 기자 kankan1@hani.co.kr ‘국정원 파문’, 보수에게 국익은 없다 [한겨레캐스트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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