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
[사설] ‘스스로 개혁’ 불가능하다는 점만 드러낸 국정원 개혁안 |
국가정보원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개혁안을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12일 보고했다. 5개월 동안 준비했다는 개혁안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정치 개입으로 물의를 빚은 조직은 그대로 두고 오히려 실효성 없어 보이는 몇몇 조직과 인원을 늘리겠다는 황당한 안이다.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안을 내놓은 것은 그간 정치 개입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탓이다.
국정원 정치 중립이 운영의 문제라는 남재준 원장의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남 원장은 국회에서 “국정원의 정치 중립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상의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법률을 개정할 필요는 없고 앞으로 운영을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말을 믿어줄 국민이 얼마나 되나.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국정원은 더 이상 스스로 정치 중립을 지키기 어려운 조직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댓글사건으로 부정선거의 원흉이 된 것도 모자라 대선 이후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공개 등으로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몇몇 곁가지 방안으로 정치 중립을 이루기에는 지금의 국정원은 너무도 만신창이가 됐다.
국정원 개혁안의 한계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국회, 정당, 언론사에 대한 연락관(IO) 상시출입 폐지는 거꾸로 말하면 가끔은 출입하겠다는 것이다. 전 직원 정치개입 금지 서약서 작성, 부당명령 심사청구센터와 적법성 심사위원회 운영, 변호사 인력을 보강한 준법통제처 설치 등은 실질적인 정치 중립과는 거리가 먼 빛 좋은 개살구 식 방안이다. 문제의 출발점인 대북심리전과 관련해 조직 통폐합 없이 시행규정을 만들어 관리·감독하겠다고 한 것도 한심하다.
국정원 정치 중립을 위해서는 법률과 운영 면에서 모두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운영 면에서는 원세훈 전 원장을 비롯해 대선 개입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선 이후 집권세력의 돌격대장 격으로 정치에 나선 남재준 원장 역시 해임해야 한다. 정치에 개입한 책임자들을 그냥 두고 정치 중립을 확보할 수는 없다.
법률적 측면에서는 국내 정보 수집 기능 폐지, 대공수사권 검경 이관, 예산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 등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운영상의 문제라며 법률 개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을 근절하겠다는 자세로 대대적인 제도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은 국정원이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없다는 점만 더욱 분명히 보여줬다. 국회가 나서고 국민이 감시해야 한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여야가 여론을 충실히 수렴해 가면서 근본적인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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