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여러분, 화두들 잡았습니까? -이남종씨 분신사건을 보며 / 김곰치 |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발생한 이남종씨 분신사건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의 ‘참혹 버전’이었다. 이남종은 마지막 남긴 글에서 “안녕하십니까” 인사하고는 안녕하시냐고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이라고 고쳐 말했다. 그렇다.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는 감히 안부도 못 묻는다.
대학생들의 ‘안녕하십니까’는 암울한 미래를 조심스레 내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이남종의 인사는 지금 현재의 삶을 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차마 안부도 못 물을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남종은 삶이 힘들었다. 1991년 조선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학업을 마친 뒤 1996년부터 7년간 장교로 복무했다. 학생 시절에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에 나섰고 국가관 또한 틀림없는 청년이다. 육군 대위로 전역한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사회 진출에 의욕적이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공부를 하며 부업으로 택시를 몰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다. 그의 많은 계획이 뒤틀려버렸다. 형이 진 빚에 같이 엉키는 불운도 있었다. 그래도 이남종은 열심히 살았다. 그는 ‘편의점 매니저’를 하며 퀵 배달까지 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생활 속에서도 어떻게 시를 썼냐는 것이다. 그가 시 작품을 한 상자나 남겼다는 것은 이남종이라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학창 시절부터 썼고 참 오랜 시간 꾸준히 썼다. 타고난 시심 없이는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시심이란 곧 순수한 마음, 착한 마음이다.
안녕하냐고 차마 묻기도 힘들다는 그의 인사는 우리네 삶의 사회·경제적 고단함을 말하고 있었다. 국가 경제정책의 굵직한 조정과 추진이 필요한 문제이고 세계자본주의의 큰 흐름과도 결부되어 있다. 쉽사리 해결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날이 악화되도록 방치할 수도 없다. 그런데 사회·경제적 문제면서도 바로 정치의 문제라는 것이 이남종의 단호한 주장이었다.
곧,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이남종을 불러냈고 그는 조금도 안녕치 못하다! 하고 쇠사슬로 온몸을 묶고 큰 불이 되면서 그 해결책까지 제시한 것이었다. 박근혜는 사퇴하라. 특검을 실시하라.
이것은 비약인가. 우리 삶의 어려움을 엉뚱한 데다 화풀이하는 것은 아닌가. ‘니가 가난하고 힘든 게 박근혜가 그랬냐’라고 차갑게 말들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사퇴와 특검’은 지금 당장의 첫 발이자 첫 단추라는 것이다. 맨 위에서부터 바로잡자고.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첩경이라고. 맨 아래에서 이렇게 일어났다고. 하나를 바로잡으면 백이 바로잡힌다고.
지난 일년, 말들이 많았지만, 딴말이 필요 없도록 그가 벼락을 때려버렸다. 국가의 설계·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사실상 우리의 유일한 행위가 투표이다. 그것을 분탕질한 인간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바로 특검인 것이다. 이것은 ‘박근혜 사퇴’ 후에 하는 것이 더욱 확실하다. 일망타진하려면 그래야 한다.
힘든 생활현장에서 안녕치 못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고 또 빛고을 광주의 아들이자 이 땅 한 명의 민주주의자로서 조금도 흠이 없었던 이남종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빈틈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인가. 다른 누가 해서도 안 되고 오직 이남종이 외쳐야 가장 그럴싸한 외침을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그가 외쳤던 것이다. 그는 시대의 화두를 주고 갔다.
화두는 잡기가 힘들다. 화두가 잡히지 않아서 문제다. 잡히기만 하면, 몰두하게 된다. 몰두하면, 정신 상태가 달라진다. 우리 정신에 굉장한 힘이 생겨난다. 이남종의 유지는 올해 우리 모두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박근혜 사퇴’가 공영방송을 바로잡는다. 박근혜 사퇴가 밀양 할머니들을 살려낸다. 박근혜 사퇴가 4대강 사업의 죄상을 밝혀낸다.
그는 누구보다 착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우리의 두려움을 가져갔다. 영면하십시오.
새해를 맞아들이며 그의 유지는 나의 화두가 되었다. 갑오년은 이미 활짝 열렸다. 여러분, 화두들 잡았습니까?
김곰치 소설가
그의 죽음은 이렇게 보도되었다 [한겨레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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