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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06 21:45 수정 : 2014.02.07 08:40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취재진과 법원 경비 등에게 둘러싸여 법원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ahni.co.kr

‘김용판 무죄 선고 판결’ 내용과 문제점
대선 개입 의도 결정적 정황마다…재판부 “아쉬움” “해프닝” 설명만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이범균 재판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6)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판결문을 읽기 전 “증인들이 진술을 하게 된 배경과 정황을 종합해 피고인의 내심에 선거개입 의도가 있는지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대선 사흘 전인 2012년 12월16일 대선 후보 간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 직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김 전 청장의 선거개입 의도를 밝힐 ‘객관적’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결국 검찰 쪽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김 전 청장과 경찰관 다수의 주장을 받아들여 선거개입 의도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 당시 관점에서 보면 납득? 재판부는 경찰 발표에 대해 “‘현재’의 관점에 따라 (당시) 피고인이나 분석팀이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긍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까지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한다면 그렇게 발표할 만했다는 얘기다. 당시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30)씨의 노트북에서 다수의 아이디와 인터넷 활동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를 더 진행하겠다고 하지 않고,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표문만 내놨다. 유권자들은 일체의 대선개입 활동이 없었다고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수서경찰서의 2012년 12월16일 보도자료와 다음날 실시한 언론 브리핑이 그 시기와 내용 면에서 최선의 것이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김하영이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하였음이 확인된 이상 이를 기초로 수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음을 밝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는 방법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었다”며 아쉬움만 표했다.

토론직후 중간수사 기습 발표, 다른 의도 없다?
표심 바꿀 사안…불분명할땐 발표 않는게 정상
보고서에 ‘혐의 없음’ 표기는 해프닝?
분석관 서명거부 사실에도…“문장 수정 차원”
경찰들 진술 짜맞출 가능성 없다?
“권은희만 다른 진술” 신빙성을 다수결로 판단

■ ‘혐의 사실 없음’ 표현은 해프닝?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핵심 내용은 증거분석보고서에 들어 있는 ‘혐의사실 없음’이라는 문구다. 재판부는 “‘혐의사실’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김아무개 디지털증거분석팀장이 ‘2012년 10월 이후 문재인·박근혜 비방·지지 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보고서에 기재됐으니 단순히 문장을 매끄럽게 수정한다는 차원에서 이런 문구를 넣자고 제안해 생긴 해프닝”이라며 “‘혐의사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혐의사실’이란 낱말의 뜻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으니 그로 인해 빚어진 오해는 불문에 부치자는 얘기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파견 나온 경찰청 소속 분석관들은 분석보고서에 통상 사용하지 않는 ‘혐의사실’이라는 문구 때문에 서명을 거부했다”며 분석보고서에 ‘혐의 없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관련해 분석관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었던 점은 인정했다. 관련 수사를 해본 경찰관들은 재판 과정에서 증거분석보고서에 ‘혐의’라는 단어를 쓰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여러 차례 진술한 바 있다. 비전문가가 보고서에는 좀처럼 쓰지 않는 ‘혐의’라는 표현을 쓰자고 제안했고, 보고서를 전문적으로 쓰는 분석관이 서명을 거부할 정도로 이의를 제기했는데, 단순히 문장을 매끄럽게 한다는 차원에서 생긴 해프닝이라는 재판부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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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빙성 판단은 다수결로? 경찰이 텔레비전 토론이 끝난 직후 밤 11시에 전례없는 긴급 보도자료 형식으로 자료를 배포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 국면상 가장 민감한 시기에 이례적인 발표를 한 행위는 선거개입 의도를 보여주는 결정적 정황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재판에 나온 증인들은 한목소리로 ‘서울청의 분석이 완료되면 즉시 그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데 대해 경찰청, 서울청, 수서서에서 모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각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고 서로 그 내용이 일치한다. 증인들이 허위의 진술을 할 만한 동기도 찾아볼 수 없다. 이광석 당시 수서경찰서장이 발표에 반발했다는 진술은 권은희 전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만 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므로 권 전 과장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권 과장을 제외한 모든 경찰관의 증언이 일치하기 때문에 권 과장을 믿을 수 없다는 단순한 논리다.

■ 진술 내용 맞출 가능성 전혀 없다? 검찰은 다수의 경찰관이 서로 말을 맞췄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법정에서 경찰관들은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번복하거나 회피했다. 재판부도 종종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해온 답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거나 “경찰들이 똘똘 뭉쳐 말을 바꾼다는 인상을 검찰이 느끼는 게 심정적으로 이해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직급과 경찰 내부에서의 위치 및 개인적 성향 등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모든 경찰관이 상당한 시차를 두고 검찰에서 수사를 받고 법원에서 증언을 하면서 서로 모의해 진술 내용을 허위로 맞추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아니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의심을 가질 만한 사정도 전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분석관들은 사실상 김 전 청장과 공범관계로 볼 수 있는데, 법원이 이런 경찰관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디지털증거분석팀 자체 판단? 이런 모든 과정에 김 전 청장의 지시도 없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디지털증거분석팀은 만 이틀 동안의 밤샘 작업 끝에 분석 조건에 맞는 글이 없다고 자체적으로 결론 내렸다. 이후 피고인에게 ‘분석 조건에 맞는 글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피고인은 보고받은 내용대로 보도자료 발표 및 언론 브리핑을 지시했을 뿐”이라며 “피고인이 실체를 은폐하고 국가정보원의 의혹을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거나 허위의 수사 결과 발표를 지시한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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