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권은희의 이유있는 항변, 상급심 새겨들어야 |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경찰 수사에 대한 외압을 처음 폭로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이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충격적 결과”라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무죄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사건의 한 당사자로서 권 과장이 밝힌 내용은 판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그는 우선, 수사 과정에서 축소·은폐가 있었는지를 따진 뒤 그에 대한 김 전 청장의 책임 유무를 따져야 하는데 판결에는 “그 전제에 대한 답변이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법률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분명히 허위의 수사결과가 발표됐는데 이에 대해선 ‘아쉽다’는 말로 얼버무린 채, 곁가지에 해당하는 사실들을 쟁점으로 나열하며 이에 대한 권 과장 진술이 믿기 어려우니 김 전 청장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 전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의 박범계 민주당 의원 역시 “수사결과 발표가 허위인지에 대한 판단이 없다”며 “만일 허위라는 판단을 했다면 김 전 청장은 유죄”라고 주장했다.
논리 전개에도 억지가 많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인 김하영씨의 아이디와 닉네임이 담긴 문서가 수서서에 전달된 시간 등에 대한 일부 착오를 이유로 권 과장과 검찰 주장을 배척했다. 그래 놓고는 서울청이 5일이나 뒤에 수서서에 전달해 사실상 수사를 방해한 결정적 대목에 대해선 “내부 논의가 필요했고, 언론브리핑 준비 등으로 바빴기 때문”이란 설득력 없는 서울청의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권 과장 말대로,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서, 게다가 키워드 축소를 요구할 정도로 신속성을 강조하면서 5일이나 지연시킨 게 상식에 맞는지 재판부 스스로 자문해볼 일이다.
증거분석보고서에 ‘혐의사실 없음’이란 왜곡된 표현을 넣은 것도 ‘문장을 매끄럽게 한다는 차원’이란 변명을 그대로 수용했으니 ‘짜맞추기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직무를 이용해 조직 내에서 일어난 행위’라는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권 과장의 지적이 판결문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내부고발자는 제쳐놓고 상관의 범죄행위에 공범일 수도 있는 자들의 증언만 채택했으니 말이다.
같은 재판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까지 맡고 있어 과연 제대로 판결할지 걱정스럽다. 무죄 판결 뒤 야당은 특검 도입을 다시 촉구하고 나섰고, 시민들은 “정의가 사라졌다”며 판결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재개했다. 상급심에서까지 엉터리 재판이 계속된다면, 특검을 통해서라도 권은희·윤석열이 지켜낸 ‘진실’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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