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9 19:54
수정 : 2014.02.1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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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즉각 실시” 시민들이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용판 전 서울경창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280여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정원시국회의’는 이날 집회를 열어 관권·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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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무죄 판단의 허점 논란
경찰의 ‘분석 범위 제한’ 주장
1심 법원이 받아들여
피의자가 수사 범위 정하는 건 궤변
복구 다해놓고 ‘범위 제한’도 모순
검찰 “ID·닉네임 댓글 추적 했어야”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을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6)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결정적 이유는, 허위 수사결과 발표를 ‘합리화’한 김 전 청장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김 전 청장의 주장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30)씨가 노트북 등을 경찰에 낼 때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전자정보 중 2012년 10월 이후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글과 관련된 전자정보’에 한해 임의제출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서만 분석하고 발표도 그 범위 안에서 했다는 이른바 ‘분석범위 제한’ 논리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의 판단은 여러 측면에서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피의자가 요구하면 수사 제한해야 하나 우선 재판부는 “압수수색 관련 법 규정에 비추면, 김씨가 임의제출에 동의한 ‘문재인·박근혜 비방·지지 글’만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 김씨가 대선개입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김씨의 노트북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에 남아 있는 게시글·댓글을 확인하는 게 상식이다. 검찰은 “게시글·댓글은 하드디스크에서 찾을 수 없고 인터넷 등 사이버 수사로 확인해야 하는 영역인데, 하드디스크만으로 범위를 한정하고는 게시글·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한 것은 앞뒤가 안 맞고 터무니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자가 수사 범위를 지정한다는 것은 궤변 중의 궤변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에서 경찰·검찰은 노트북을 압수하고 전부 다 복구해 혐의 단서를 찾는다. 혐의자가 이것만 보라고 해서 그것만 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사상 필요하다면 김씨가 임의제출한 노트북을 다시 압수수색해서라도 필요한 내용을 찾아내야 했는데 서울경찰청이 이런 노력을 전혀 안 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 경찰 주장의 모순 서울경찰청이 김씨의 요청에 따라 분석범위를 한정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경찰청 분석팀은 김씨의 노트북에서 다수의 아이디·닉네임 등이 기재된 삭제파일, 인터넷 접속기록 수십만건을 복구했다. 분석팀은 그 과정에서 김씨가 선거·정치 관련 글을 읽고 쓰거나 찬반 클릭을 한 사실도 확인했다. 애초 분석범위를 한정했다면 들여다보지 않았어야 할 내용들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 주장을 받아들인 재판부 논리를 따르면, 김하영씨가 노트북을 제출하면서 파일을 삭제했다는 것은 그 파일을 분석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메모장 파일을 복구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은 김씨의 의사에 반하는 자료를 들여다보는 것이 된다. 김씨 요청에 따라 분석범위를 제한했다는 경찰의 주장과 스스로 모순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분석팀은 김씨가 제한한 ‘문재인·박근혜 비방·지지 글’만 확인해야 한다면서 아이디·닉네임은 게시글이 아니라는 이유로, 찬반 클릭도 게시글이 아니라는 이유로, 김씨가 쓴 이정희 후보 비방 글은 문재인·박근혜 후보 관련 글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사 발표에서 뺐다. 이는 경찰이 허위 수사발표를 합리화하려고 나중에 ‘분석범위 제한’ 논리를 들고나왔다는 검찰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 수사 필요성 재판부는 추가 수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현실과 다른 판단을 했다. 경찰이 수사발표 때 뺀 아이디·닉네임 등에 대해 “당시로서는 (포털 등) 서버를 압수수색할 필요성이 있을 정도로 이례적으로 보이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이후 아이디·닉네임을 넘겨받은 지 하루 만에 구글링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고, 이틀 뒤엔 포털 서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수사에 나섰다. 재판부 판단과 달리, 경찰이 아이디 등을 근거로 강제수사를 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오길영 교수는 “혐의(댓글) 자체가 웹서버에 있다. 댓글을 찾는다면서 하드디스크를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수사의 기초를 어겼다. 오직 국정원 댓글 사건만 다른 모든 사이버수사와 방향이 달랐다. 분석관들이 찬반클릭 등을 발견했지만 서버를 압수수색할 필요를 못 느꼈다면 그 분석관들은 분석관들로서 자격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경찰의 주장은 김용판 청장의 개입 사실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광철 변호사는 “분석관이 늘 하는 일이 구글링이고 노트북 분석에서 나온 아이디 같은 단서로 혐의를 쫓아 추적하는 일이다. 그건 초등학생이 구구단을 외우는 것처럼 당연하다. 재판부가 ‘혐의와 상관없어서 발표 대상에서 뺐다’는 경찰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이 대목에서 형사재판의 상식과 경험칙에 근거한 판단을 안 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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