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9 21:56
수정 : 2016.04.26 10:43
‘정치개입 했지만 선거개입 아니다’
‘핵심인물’ 원세훈 1심 집행유예
‘선거법 위반’ 김용판도 끝내 면죄부
‘좌익효수’ 수사는 1년6개월째 끌어
사건 제보자엔 다른 사건으로 기소
권은희 의원은 ‘위증’수사 받게될 듯
진실 밝히려던 사람들만 수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보면, 전반적으로 검찰은 봐주기 수사를 하고, 법원은 이런 수사 결과마저도 인정하지 않아 면죄부를 주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검찰은 불기소·부실 수사, 법원은 솜방망이
국정원 사건 ‘핵심인물’인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은 1심에서 국정원법 위반죄는 인정됐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때 인터넷에서 광범위한 선거 개입 활동을 한 것에 대해 ‘정치 개입은 인정되나 선거 개입은 아니다’라는 기묘한 판단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런 재판 결과가 나오는 데는 청와대를 의식한 듯한 검찰의 부실 수사도 역할을 했다. 검찰은 2013년 6월 원 전 원장만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민주당이 반발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고, 서울고법이 이를 받아들여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이 추가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정치 개입 글을 쓴 국정원 직원들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기소유예 또는 입건유예 처분했다. 직접 범죄행위에 나선 이들을 기소·입건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당시 “상명하복에 충실한 국정원 조직의 특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법정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는 일이다”라며 원 전 원장의 혐의를 부인하는 진술을 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10월 국정원 직원 31명도 처벌하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가 맡고 있다.
■ ‘좌익효수’ 수사도 지지부진
검찰은‘좌익효수’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며 특정 지역과 야당 정치인,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 글 수천건을 인터넷에 올린 국정원 직원에 대한 수사를 1년6개월째 끌고 있다. ‘좌익효수’는 “절라디언(전라도 사람)들은 전부 씨족을 멸해야 한다”, “문죄인(문재인) 뒈져야 할 텐데” 등의 글 3451건을 인터넷에 올렸다.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의 딸을 대상으로 “거 참 ○까치 생겼네 지애미처럼… 저 ○도 커서 빨갱이 될꺼 아님?”이라고 모욕하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악착같이 처벌하는 것과 대비된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는 ‘곁가지’인 증거인멸에 연루된 경찰관만 처벌받았다.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컴퓨터 자료들을 지워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박아무개 전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장은 1심에서 징역 9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징역 9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 제보자는 별건 수사-권은희 의원 처벌 가능성도
반면 국정원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고 한 이들의 수난은 계속됐다. 국정원 사건을 민주당에 제보한 혐의(국정원직원법 위반 등)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국정원 직원 김상욱(52)씨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정씨는 한 약국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를 무마하는 대가로 5000여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22일 인천지검 특수부(부장 정순신)에 의해 구속 기소됐다. 국정원 내부 정보를 김씨에게 넘긴 혐의로 파면되고 재판에 넘겨진 전직 국정원 직원 정아무개(51)씨는 국정원직원법 위반죄가 인정돼 항소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 아들 문제로 사퇴한 것도 사건을 대충 덮고 싶은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전 청장의 무죄가 확정되면서, 검찰은 권은희(41)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위증 혐의 수사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권 의원은 대선 직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국정원 댓글 사건의 초기 수사를 맡았는데, 한 보수단체는 법정에서 김 전 청장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거짓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권 의원을 고발했다. 검찰은 조만간 사건에 관련된 경찰관들을 조사한 뒤 권 의원을 소환할 계획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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