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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18 09:32 수정 : 2017.06.18 10:08

[토요판] 뉴스분석 왜?
국정원 ‘개혁 발전위’와 ‘적폐청산 조사 TF’

‘적폐청산 조사 TF’ 감찰실에 설치
댓글·간첩조작 등 여러 의혹 조사
검사 출신 조남관 실장이 지휘
‘국정원개혁발전위’도 다음주 출범

불법적 정치 개입 기획·가담자
처벌 피하고 되레 승진하기도
“국정원 개혁 성공 위해선
직무 이탈자 처벌해야” 목소리

서훈 신임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개혁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지난 1일 취임과 동시에 주요 기관을 출입하는 국내정보 담당관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그는 취임식과 창설기념식에서 “최고의 엘리트 직원들이 피시방을 전전하면서 남의 눈치를 살피며 댓글을 달 때 느껴야 했을 자괴감과 번민”을 언급하면서 “국가정보원 1기를 마감하고, 제2기를 힘차게 열어가자”고 말했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팔이 잘려 나갈 수도 있다”며 재탄생 수준의 개혁을 예고했습니다. 국정원이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 잘못을 반성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있을까요?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까요?

2012년 대선을 며칠 앞둔 12월11일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가 대선 관련한 인터넷 댓글을 달다가 적발됐다. 민주통합당 관계자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수서경찰서 직원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지만, 김씨는 이를 거부하고 집 안에서 버텼다. 국정원과 김씨는 댓글을 단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수사 결과 심리전단 직원들이 지속적이고 광범하게 대선에 개입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문병호·강기정·우원식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노란색 옷을 입은 이·왼쪽부터)과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오른쪽 둘째)이 김씨를 설득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현재 국가정보원 개혁 작업은 두 갈래로 추진되고 있다. 하나는 국정원의 제도 개혁을 위한 작업이며,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권 및 박근혜 정권 때 저질렀던 각종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이다. 국정원 조직 개편 등 제도 개혁은 ‘국정원 개혁 발전위원회’에서 맡고,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은 ‘적폐 청산 조사 티에프(TF)’에서 담당한다.

‘국정원 개혁 발전위원회’는 “정치개입 근절과 순수 정보기관으로서의 역량 강화 등 개혁을 주도”하게 된다. 국정원은 이와 관련해 “위원장은 외부에서 개혁 성향의 학자 출신이 맡고, 위원은 평소 국정원 개혁에 관심을 보여온 변호사, 학자 등 외부 전문가와 국정원 전·현직 직원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 인원 중 전·현직을 제외한 외부위원이 3분의 2를 차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출범해서 약 3년간 활동했던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원회)와 유사한 성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실위원회’가 과거사 진상 규명에 역점을 뒀던 데 비해 ‘개혁 발전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국내 정보 수집 폐지 △해외 안보정보원으로 개편 △대공수사권 이양 등의 제도적 개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조국 민정수석이 발전위원회에 참여할 것이라 보도했지만,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16일 “조 수석이 직접 발전위에 들어오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댓글 사건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로 심리전단 직원 70여명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앞서 경찰은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주도로 대선 이틀 전 한밤중에 기자회견을 열어 “댓글 흔적이 없었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013년 8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감찰실장 외부인사 발탁은 청와대 뜻”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이 벌였던 정치공작과 개입 등의 어두운 과거사 조사를 맡게 될 ‘적폐청산 조사 티에프’는 국정원 내부의 자체 조직으로, 감찰실(실장 조남관) 산하에 구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의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들에 대해 감찰실이 직접 칼을 빼든 모양새다. 셀프 감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 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과장으로 일했던 조남관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감찰실장에 발탁했다. 국정원은 “적폐청산 조사 티에프는 올해 안에 각종 의혹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조 감찰실장 발탁은 청와대 뜻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국정원의 잘못된 과거에 대해 강도 높게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적폐 청산 티에프’의 조사 대상은 특정한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국정원 안팎의 설명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박원순 제압 문건 등 이른바 7대 의혹 사건이 조사 대상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한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개혁 차원에서 문제되는 것은 다 들여다보게 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서훈 원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의 의혹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무리가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살펴보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 진상을 알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의 대표적인 일탈 사건은 2012년 대선 때의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대선 직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이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서 대선 관련 댓글을 달다가 적발됐다. 경찰과 검찰 수사를 통해 원세훈 당시 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70여명이 댓글뿐 아니라 인터넷 게시글, 트위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여당 후보 당선을 위해 활동한 사실이 상당 수준 밝혀졌다. 공직선거법과 정치활동을 금지한 국정원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행위다. 하지만 사법 심판대에는 원세훈 원장과 이종명 국정원 3차장, 민병주 심리전단장 3명만 섰다. 김하영 등 심리전단 직원들은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심리전단의 핵심 간부였던 구아무개 기획관이 1급지 해외 공관에 공사로 파견돼 근무하는 등 인사 혜택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원세훈 등 3인에 대한 사법적 단죄 역시 흐지부지되는 양상이다. ‘공직선거법 무죄, 국정원법 유죄’라는 판단과 함께 세명을 모두 집행유예 처분했던 1심(부장판사 이범균, 2014년 9월11일)의 솜방망이 판결은 2심(부장판사 김상환, 2015년 2월9일)에서는 다소 바로잡히는 듯했다. 2심은 국정원법뿐 아니라 공직선거법도 유죄로 봤으며, 원세훈 원장(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에 대해서는 법정 구속했다. 그러나 다시 대법원은 2015년 7월 핵심 증거들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 원장은 곧 이어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파기환송심 재판에서는 재판장이 피고인 편을 노골적으로 들어 검찰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7월말쯤 파기환송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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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효수’ 비호 누가 했나

검찰 수사 때 국정원이 상당수 증거를 파기하거나 숨긴 점을 고려하면 ‘적폐 청산 티에프’의 첫번째 과제는 국정원 댓글 사건의 전모, 특히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상까지 밝혀내는 일이다. 또 검찰 수사를 방해한 행위, 특히 검찰 수사팀을 뒷받침하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뒷조사에 국정원이 개입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해성사 차원의 진실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심리전단 직원이 아니면서도 인터넷상에서 호남과 여성을 비하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린 직원이 ‘좌익효수’ 말고도 더 있는지 밝혀야 한다. 국정원은 인터넷 닉네임 ‘좌익효수’의 존재가 알려진 뒤에도 그가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한동안 주장하는 등 그를 비호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도 국정원이 저지른 흑역사의 하나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새누리당의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부산 유세에서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과 토씨까지 같은 내용을 발표했으며, 2013년 6월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본격화하자 비밀문서인 대화록을 일반문서로 자의적으로 분류해 아예 공개했다. 국가 기밀을 선거 또는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검찰은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하고, 남재준 원장과 김무성, 서상기, 조원진, 조명철, 윤재옥 의원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따라서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2급비밀인 대화록을 새누리당의 선거운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넘겨준 사람이 누구인지, 그 뒤 남재준 원장이 일방적으로 공개를 결정하게 된 과정 등을 밝혀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과 ‘반값 등록금 차단 문건’은 이명박 정권의 원세훈 국정원장 때 발생한 일이다.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은 “박 시장 취임 이후 세금 급식 확대, 시립대 등록금 대폭 인하 등”으로 “야세 확산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어 면밀한 제어 방안 강구가 긴요”하다며 “박 시장에 대한 불만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될 때까지 자료를 축적해 적기에 터뜨려 제압”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 방안으로 “자유청년·어버이연합 등 범보수진영의 박 시장 규탄 집회, 항의 시위” 등을 제시했다. 2011년 11월24일자의 이 문건은 작성 주체와 관련해서는 국익전략실 사회팀 코드인 2-1이 명시돼 있고, 배포 라인도 0-0(원장), 2-0(2차장), 3-0(3차장)이라고 기재돼 있다.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 공세 차단’이라는 제목의 ‘반값 등록금 차단 문건’(2011. 6. 1.)은 국익전략실 사회팀의 6급 조아무개가 작성했으며, 보고 라인으로는 함아무개(4급)와 추아무개(2급)를 적시했다.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은 작성 직후인 2011년 11월 말과 12월 초에 자유청년연합과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의 서울시장을 겨냥한 시위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등 그 내용대로 실행된 흔적이 역력하다. ‘반값 등록금 차단 문건’의 경우 당시에 진선미 의원(민주당)이 문건의 전화번호로 전화해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2013년 10월 “두 문건의 형식이나 글씨체가 국정원 것이 아니다”라는 국정원의 부인과 관련자들의 소환조사 불응 등으로 고발 사건을 각하했다. 이후 문건 책임자인 추아무개 국장은 2014년 8월 국내 정보 수집 총괄국장(1급)으로 오히려 승진했다가 지난 2월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폐 청산 티에프’는 이 두 문건에 대한 진실도 명백하게 규명해야 한다. 복수의 전직 국정원 직원들이 “(박원순 제압 문건은) 국정원이 작성한 것이며 국정원은 이 문서에 나온 대로 실제로 기획하고 실행했다”(<시사인> 2016년 8월)고 증언한 바도 있다.

국정원은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했던 북한이탈주민 유우성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중국 선양 총영사관을 동원해 증거를 조작하는 공작까지 벌였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가 2014년 1월7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수사기관의 증거은닉·날조 혐의 고소·고발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심경을 밝히던 중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블랙리스트 개입 의혹도 규명해야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이 어디까지 망가졌는지를 보여준다. 북한이탈주민 유씨를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가 2013년 8월 1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국정원은 중국 선양 총영사관을 동원해 거짓 증거를 조작했다. 유례가 없는 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국정원에서는 대공수사국의 김보현 과장(징역 4년) 한명뿐이다. 이재윤 대공수사처장은 벌금 1000만원, 권세영 과장과 선양 총영사관의 이인철 영사는 각각 벌금 700만원에 그쳤다. 대공수사국의 국장(1급)과 부국장(2급), 계선상의 상급자인 서천호 2차장, 남재준 국정원장은 전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조작 문서를 주고받은 외교 전문의 전결권자는 대공수사국 부국장이며, 일부는 대공수사국장이 결재한 것으로 밝혀져 국정원 상부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증거 조작 과정에서는 국정원장이나 차장 등 고위관계자들이 몰랐다고 하더라도 언론 보도로 조작 혐의가 불거진 이후에는 상황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이들은 거짓 해명으로 일관한 바 있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때 불거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도 국정원이 개입한 의혹이 짙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 때 국정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 명단을 확인하고, 국정원 직원에게 이를 문화체육관광부 직원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문체부는 청와대에서 받은 명단은 ‘B’(블루하우스 약자)로, 국정원에서 보낸 명단은 ‘K’(국정원 약자)로 표시해 관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에 터진 국정원 불법해킹 의혹도 여전히 석연치 않다. 국정원은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국정원이 구입해 대북 대테러용으로 사용했다”고 했지만, 내국인을 대상으로도 사용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내국인 사찰 논란의 와중에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사건 역시 해킹 프로그램이 내국인 사찰에 활용됐는지 여부 등이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국정원 자체적으로 구성한 ‘적폐 청산 티에프’가 이러한 묵은 의혹들을 말끔히 드러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워낙 환부가 넓은데다 관련자도 많아서 내부 저항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두 야당도 “정치 보복”이라며 옛 국정원의 비리를 두둔하고 나섰다.

하지만 여권은 아직까지는 태도가 단호하다. 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의지가 강하다. 그런 상황에서 국정원장의 의지가 약한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서훈 원장이 개혁의 전권을 위임받은 만큼 무한 책임을 지고 적폐 청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사 결과 직무를 이탈한 것이 확인되는 사람들은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보위의 신경민 의원도 “의혹 사건 규명은 개혁의 출발점일 뿐”이라며 “국정원이 개혁을 통해 새출발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끊임없이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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