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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22 17:32 수정 : 2018.07.23 08:45

공선옥
소설가

시인 도종환 장관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 위원회는 이렇게 그 운명이 다했다. 그 위원회의 생명을 연장할 돈을 주면 안 된다고 국회가 돈줄을 막아버려서. 개별 사건으로 인해 구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왜 일이 그렇게 되었는가의 이유를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다.

지금은 스마트폰 전성시대.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 모든 것은 너무나도 빨리, 스마트하게 잊힌다. 잊히지 않으면 안 된다. 잊히지 않는 것이 많으면 살 수가 없다. 괴로우니까. 괴로워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괴로운 일이 줄어들 터인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잊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이명박근혜 시절도 그렇다. 생각하면 참 ‘얼척(어처구니)’이 없다. 그런데도 이 폭염 속에서 그들의 시대는 까마득하다. 까마득한 게 폭염 탓이라고 둘러대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잊을 수가 없고 잊어서도 안 되지만 자꾸만 잊어버리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 괴로우니까. 그러나 그들의 시대로 인해서 지금도 고통스러운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폭염이 끝나면 이제 무엇으로 잊어지는 핑계를 댈 것인가 싶다.

그러니,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우리 집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보낸 ‘진상조사결과 보고서’가 우편으로 왔다. 피해자 조사를 받은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그런데, 결과 보고서에는 피해자 조사 내용은 있으나 ‘가해자’ 조사를 하지 못해 피해 신청인의 주장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나와 있다. 피해를 입은 과정에 대해서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리라 추정은 가능하지만 피해를 주장하는 이의 상대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그 ‘왜’의 부분이 규명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7월 말에 그간의 ‘백서’를 발간하는 것으로 그 활동이 완전히 종료된다고 한다. 조사 행위는 이미 종료되었다. 이명박, 박근혜씨가 권력을 잡은 그 기간 동안 은밀하고 악의적이며 조직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진상조사 활동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듣기로는 지난해 12월 말에 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고 한다. 진상 조사를 하는 인력 쓰고 사무실 유지하는 비용(8억원 정도라고 한다)이 한 푼도 없으니 진상조사위원회에 들어와 일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끝날 일 같으면 하지를 말지, 참말로 뭔 일이 이런가 모르겠다, 는 탄식이 절로 나올 판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진상 조사하고 제도를 개선할 방도를 찾는 일을 하려고 모여든 사람들은 지난 아홉 달 내지 열한 달(블랙리스트 범죄행위는 10년 동안 이루어졌는데!) 일했던 한시적 사무실을 떠나면서 책임규명 권고안, 적극 가담자에 대한 수사의뢰, 징계하는 데 참조하라는 참조안 등등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이관하고 해산되었다. 이제 문체부는 그 ‘비정규직 진상조사위원회 조사관 내지는 직원’들이 건네준 자료를 바탕으로 ‘이행협치 추진단’을 만들어 가칭 ‘표현의 자유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7명의 직원을 뽑아 또 하나의 한시적 기관을 운영할 모양이다.

시인 도종환 장관의 문체부 산하 한 위원회는 이렇게 그 운명이 다했다. 그 위원회의 생명을 연장할 돈을 주면 안 된다고 국회가 돈줄을 막아버려서. 개별 사건으로 인해 구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왜 일이 그렇게 되었는가의 이유를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다. 이제 각 피해자들은 개인적으로 문체부 감사관실에 재조사 청구하고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변호사를 찾아 민사소송이라도 해야 할 판이 되었다.

더운데 입맛은 없어 맹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분명 뒤탈이 생길 것 알면서도 그렇다. 진상조사결과 보고서 앞에서 지금 내가, 입맛 없다고 급하게 물에 만 밥 먹고 체한 형국이다. 지금 큰 회사, 작은 회사 불문하고 민간업자들과 한가지로 중앙, 지방 정부, 그 산하 기관 할 것 없이 사람을 필요에 의해서 단기 채용하고, 물 말아 밥 먹는 사람처럼 후다닥 일 시킨 뒤 정해진 기간이 다하면 스마트하게 ‘해산’시켜버리는 행태가 한국 사회에 보편이다.

블랙리스트 조사관들이 조사해야 했던 (그러나 온갖 이유로 조사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진상조사관들도 모두 단기채용자였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실무자였던 단기채용자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실무자가 아닌 이유로 책임을 묻기도 어려울 만한, 조사할 수도 없는 아주 안전한 자리’에 누군가가 있다. 그가 누구이며 그자들의 생명을 누가 보장하고 있는가. 혹시 나는, ‘어처구니’(맷돌의 손잡이) 없는 맷돌, 사용이 불가능한 맷돌을 쳐다보며 그것이 맷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천 아래서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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