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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26 15:52 수정 : 2016.02.26 17:21

누리꾼들, 23일부터 시작된 ‘필리버스터’ 보며
의원들의 인상적인 발언·장면을 가공해 공유
TV 예능 프로그램 빗대 ‘마이국회텔레비전’ 단어 유행

트위터 사용자 @not_******이 만든 패러디 로고
지난 23일부터 테러방지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릴레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지루할 수도 있는 정치인의 긴 발언에서 의미뿐 아니라 재미를 찾아내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리꾼들은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에 빗대 이번 필리버스터 인터넷 생중계를 ‘마이국회텔레비전(이하 마국텔)’이라고 부르며 입길에 올리고 있다.

화제의 중심에는 필리버스터 첫날인 지난 23일부터 <국회방송>의 영상과 실시간 댓글창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팩트TV>의 유튜브 채널이 있다. 누리꾼들은 팩트TV 채널에서 야당 의원들의 연설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의 돌발행동, 의장단의 의사진행 모습을 보며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 뿐만 아니라, 의원들의 인상적인 발언 모습이나 재미있는 장면을 갈무리한 뒤 가공해 재배포하는 ‘디지털 놀이’로 야권의 필리버스터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유튜브 팩트TV 생중계 채널 : https://youtu.be/KavUBaV-jL4)

■ 재미와 정보 - ‘죄 읽어주는 남자’ 신경민

‘마국텔’의 무대인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는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의 인터넷 생방송 중계방과 여러 모로 흡사하다. ‘마리텔’은 유명인들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의 시청률(실시간 누리꾼 반응)을 겨루는 일종의 경연 예능 프로그램이다. 발언대에 선 야당 의원들이 ‘방주인’이라면,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장단은 진행을 돕는 스태프이고, 생방송 도중 가끔 찾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깜짝 손님’인 셈이다.

25일 오후 신경민 의원의 연설에 많은 누리꾼들이 실시간 댓글을 달고 있다. 이 모션 GIF는 초당 10프레임으로 인코딩됐으며, 변환 과정에서 속도 조작을 하지 않았다. 팩트TV 유튜브 채널 갈무리

25일 오후 국회 정보위 소속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방에는 3만~4만여명의 누리꾼들이 동시에 몰려 한때 접속이 불안정해지기도 했다. 신 의원은 전직 앵커다운 차분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화법으로 새누리당의 필리버스터 공약 말 바꾸기와 역대 대한민국 정보기관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지적했다.

신 의원이 생방송 도중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의 공약이다’라고 발언한 시간에 공교롭게도 새누리당의 누리집이 다운됐으며, 국정원 댓글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 ‘좌익효수’를 언급하자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걸렸다. 누리꾼들은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를 다시 듣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신 의원 연설만 따로 떼어 소장하고 싶다”며 호응했다.

■ 감동 - ‘강 목사의 신앙 간증’ 강기정

신경민 의원에 이어 25일 밤 발언대에 오른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더불어민주당의 ‘컷오프’ 방침에 따라 20대 총선 출마가 좌절됐음에도 불구하고 필리버스터에 힘썼다.

강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이 없던 시절 국회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형사처벌을 당했던 경험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렇게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면 폭력 의원으로 낙인찍히지 않았을 것이고, 저의 4선 도전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 자리가 몸싸움했던 자리가 아닌, 날을 새 가면서 토론할 수 있었던 자리가 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 뒤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마무리해 중계방을 숙연케 했다.

누리꾼이 ‘마이리틀텔레비전’의 한 장면처럼 재가공한 강기정 의원의 25일 밤 연설 모습.

강 의원이 발언대에서 내려오자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나와줘서 고맙다, 사랑한다”며 강 의원을 격려했다.

■ 시청자와 함께 - ‘법이 빛나는 밤에’ 김경협

강기정 의원에 이어 26일 새벽 발언대에 오른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설 전 누리꾼들에게 “테러방지법 반대 이유를 남겨주시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자 한자 또박또박 남김없이 국민의 목소리로 전하겠다”고 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내 이름을 국회 속기록에 남길 수 있는 기회”라며 트위터 등을 통해 의견을 전달했다. 누리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느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는 김 의원의 모습이 마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디제이를 닮았다며 김 의원의 연설에 ‘법이 빛나는 밤에’라는 이름을 붙였다.

■ ‘법밤’의 ‘깊은 밤 깜짝 손님’ 조원진

한편, 김 의원이 “지금 SNS에서는 테러방지법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며 ‘국민스토킹법, 빅브러더법, 유신부활법, 국민주권 강탈법, 아빠 따라하기법…’ 등의 누리꾼 댓글을 소개하자,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의장석에 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에게 다가가 “의제와 관련 없는 내용”이라고 항의하며 김 의원의 연설을 방해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6일 새벽 국회에서 열린 테러방지법 처리 저지를 위한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무제한 토론 도중 이석현 국회부의장에게 김 의원의 발언이 의제와 벗어 났다고 항의를 계속하자 이 부의장이 의사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 부의장의 설득에 자리로 돌아간 조 의원은 잠시 뒤 “지금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된다”며 김 의원의 연설을 다시 중단시켰다. 조 의원은 이 부의장에게 다시 다가가 “전혀 아닌 사실을 이런 식으로 (말)하시면 안 된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에 이 부의장은 “어떤 것이 전혀 아닌 사실이냐”, “(테러방지법을) 그렇게 말하는 국민도 있다는 것 아니냐”고 조 의원에게 되물은 뒤 “의사 진행 분명히 하고 있으니 (자리로) 들어가라”고 지시했으나 조 의원이 “저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라며 거부했다.

의사 진행 방해가 계속되자 이 부의장은 목소리를 높여 “퇴장시키기 전에 빨리 가서 앉으세요. 꼭 퇴장시켜야 알겠어요? 경위 불러서”라며 강력하게 경고해 조 의원을 자리로 돌려보냈다. 이어 이 부의장은 “의장의 의사진행권을 방해하지 마세요. 참을 수 없습니다”라며 조 의원에게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누리꾼들은 조 의원의 돌출성 행동을 두고, 방송 흐름을 끊고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느낌을 주는 ‘57분 교통정보’라며 비꼬았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2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을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교양 - ‘굿모닝 법스’ 서기호

26일 아침 김경협 의원의 뒤를 이은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전직 판사답게 해박한 법 지식을 바탕으로 테러방지법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법도 알려주고, 책도 추천해준다. 정말 유익하다”, “돈 주고 들어야 할 것 같은 내용”이라며 인기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굿모닝 팝스’에 빗대 서 의원의 연설에 ‘굿모닝 법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평일 아침 이른 시간 진행된 서 의원의 연설을 생방송으로 시청한 누리꾼은 2만여명에 이르렀다.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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