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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02 21:18 수정 : 2016.03.02 22:27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일 오후 마지막 발언자로 나서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날려버렸다. 사죄의 뜻으로 쓰러질 때까지 발언하겠다”고 말하며 울먹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필리버스터가 남긴 것

9일간 38명 192시간 발언 신기록
직권상정때 흔하던 폭력고리 끊어
소수 목소리 가감없는 전달 통로로
야당 갑작스런 중단 결정 아쉬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야당이 벌인 필리버스터는 9일 내내 기록을 갈아치웠다. 2월23일 저녁 7시5분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테이프를 끊은 무제한 토론은 3월2일 저녁 7시32분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를 마지막으로 192시간27분에 이르렀다. 단일 사안 세계 최장시간 필리버스터 기록이다. 이 원내대표는 12시간31분으로 국내 최장 ‘1인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웠다. 총 발언자는 38명에 이르렀다.

이런 ‘신기록’ 외에도 필리버스터가 남긴 것들은 많다. 2012년 국회법 개정 이전엔, 다수당이 원하는 법안·예산안 등을 일방적으로 처리할 때 야당이 지닌 유일한 수단은 ‘물리적 방어’밖에 없었다. 직권상정이 강행될 때마다 의장석 점거, 의장실 봉쇄, 몸싸움이 벌어져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관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그동안 다수당이 누가 되든 매번 등장했던 폭력의 고리를 끊는 전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의회 운영은 다수제 민주주의를 따르고 있지만, 물리력 외에도 소수가 다수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의미한 수단이 있음을 깨닫게 한 것도 성과다.

야당 의원들이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1일 밤과 2일 새벽에 걸쳐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당 주승용 의원, 정의당 정진후ㆍ심상정 의원. 연합뉴스

종합편성채널 등이 극보수 성향에 가까운 정치 관련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상황에서, 야당의 목소리가 가감없이 전달됐다는 데서 의미를 찾는 이들도 많다. 소수가 다수의 주장을 왜 반대하는지 국민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직접적 통로가 됐다는 것이다. 미디어 전문가인 최민희 더민주 의원이 25일 무제한 토론을 벌인 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배제됐던 소수 의견을 소개하는 기회였다고 감격스러워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필리버스터가 여당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현행 국회법상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 대상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지체없이 표결하도록 돼 있다. 조성대 한신대 정치학과 교수는 “필리버스터는 평화적으로 갈등을 ‘전개’할 수 있는 제도이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즉, 필리버스터의 성공은 ‘말의 정치’로 사회적 여론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또 다수당이 이런 흐름에 얼마나 유연하고 민감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성대 교수는 “이번에 시민들이 필리버스터에 대해 보여준 뜨거운 관심을 감안한다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정치적 부담을 느껴야 했지만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의장석에 앉아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비판에 직면하면서도 직권상정을 철회하지 않았고, 여당은 테러방지법 협상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마무리지으면서 보인 미숙함도 지적된다. 이관후 연구원은 “며칠 전부터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야당의 고뇌를 설명하면서 대국민 호소 정국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다”며 “지도부가 필리버스터 중단을 갑자기 결정하면서, 그동안 ‘정치 현장’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지자들을 응원석에서 쫓아내는 듯한 상황이 돼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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