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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3 21:06 수정 : 2016.05.24 15:09

2016 한국, 여성혐오와 마주서다
차별에 뿌리둔 ‘여혐’ 수면 위로
평등세대, 모순 맞서 목소리 분출

23일 오후 20대 여성 8명이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 드러누웠다. 이들은 각자 ‘홧김에’ ‘무시당해서’ ‘만나주지 않아서’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경찰 가면을 쓴 다른 한명이 바닥에 누워 있는 이들의 피켓에 ‘묻지마 범죄’라고 적힌 붉은색 딱지를 붙였다. 참가자들이 피켓들을 뒤집자 “여성혐오가 죽였다”는 문구가 완성됐다. 22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발표한 경찰에 항의하는 퍼포먼스였다.

지난 17일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흔한’ 여성 살인사건 중 하나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한국 사회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현상과 마주하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가 거대한 추모와 젊은 여성들의 발언 공간으로 변해갔고, 추모 열기는 여성혐오범죄 반대 운동으로 번져나갔다. 한편에선 같은 공간에 일베 회원의 화환이 등장하고, 핑크색 코끼리 인형 옷을 입은 사람이 “육식동물이 나쁜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것”이라는 문구가 적힌 화이트보드를 들고 나타나 추모객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20대 여성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경찰이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을 정신질환 범죄 유형로 규정한 데 항의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여성혐오 범죄’ 수사를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386세대’인 강아무개(50·회사원)씨는 “이 사건 자체보다 이후 나타난 현상들이 놀라웠다”며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행동하게 만드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사회학)는 23일 페이스북에서 “중요한 것은 왜 이 사건을 두고 여성들이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공포와 분노의 본질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경찰서 퍼포먼스에서 드러나듯 많은 여성들과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과 추모 현상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여성혐오’(여혐)를 꼽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지만, 실제는 사회 저변에서 은밀하게 번지고 있던 하나의 현상 즉 ‘여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유진(가명·27·대학원생)씨는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범죄가 맞다고 생각한다. 정신질환자라고 해도 망상의 영역은 사회를 반영한다. 그 사람의 ‘여성이 나를 무시했다’는 망상에도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여자들은 머리가 멍청해서 남자한테 안 된다’는 개그맨 장동민의 발언이 알려졌을 때 당연히 방송에서 하차할 것으로 생각했다. 여자들도 똑같은 시청자이고 똑같이 돈을 내는데.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충격적이었고 좌절감이 컸다. ‘자본주의 위에 여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여성들의 추모 열기의 배경에는 20대 여성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것을 가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여성혐오 문화 속에서 자신들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고 불안정한 지위의 어려움과 두려움에 대해선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보는 인식이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는 문제제기를 스스로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고한솔 박수지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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