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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7 20:18 수정 : 2016.06.08 10:26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에 대한 살인이라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사건’이었지만, 그러한 반복적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공감·애도·분노하면서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적인 불안·공포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최초의 사회적 사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응답해야 할 질문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혐오범죄 논란을 지켜보면서 드는 의문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여성차별과 여성혐오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다. 혐오범죄 논란은 ‘여성혐오’라는 언어의 낯섦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라는 용어는 ‘외국인혐오’, ‘동성애혐오’라는 용어와는 달리 더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령 ‘동성애는 치료되어야 한다’, ‘외국인은 추방되어야 한다’는 형태의 혐오는 외국인 차별, 동성애자 차별과는 다른 층위의 특정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순수성에 대한 오염, 그 오염에 대한 공포 등 동성애혐오와 외국인혐오는 그 정체성 자체를 적대시한다. 적대시의 태도는 공격적 성향으로 나타난다. 가령 동성애자 치료를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광고와 집회를 일삼는 일부 기독교 단체의 행위나, “아자! 방글라 놈 열여덟 마리 추방시켰다~”며 ‘불법체류자’ 추방 운동을 벌이는 단체의 행동이 그렇다. 분명 혐오는 차별에 근거한 것이지만, 혐오에 기인한 행위와 차별은 구분될 수 있다. 이런 구분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차별적 동기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 혐오 또는 증오에 의한 범죄를 가중처벌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라는 용어는 여성차별이라는 개념과의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은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이 개념이 널리 사용된 것은 일베 등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적 현상에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 다만,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일베 등의 현상과는 달리, 그 경계가 모호한 현상에도 여성혐오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중식이밴드에 대한 ‘여혐’ 논란도 그랬다. 일부 문제된 가사 중에 여성 차별적·비하적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이 “통찰 없는 관찰”(전혜정)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일베류의 여성혐오적 동기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여성혐오라는 용어는 아직 낯설고 아프다. 그것이 낯설고 아픈 이유는 매우 근본적인 관점으로 폭넓은 현상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성차별적 문화, 구조로 인한 ‘혜택’을 누리며 산다.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현상은 성차별적 행위와 구조, 문화가 사실은 ‘여성혐오’적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근본적 측면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용어의 과잉은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인플레이션’된 개념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기도 어렵다. ‘여성혐오’라는 언어의 포괄적 사용이 우리 사회에 아픈 통찰을 제공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지, 개념의 과잉으로 인한 대립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는 조금 더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나 스스로도 ‘여성차별’과 ‘여성혐오’는 다른 층위의 태도·현상을 지칭하는 제한된 용어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구조와 문화에 똬리 틀고 있는 혐오적 태도를 아프게 인정하는 언어로 넓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정하기 어렵다.

정정훈 변호사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가?’ 하는 문제도 그런 측면에서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던진 질문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여성혐오라는 용어의 개념과 그 사용방식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응답해야 한다.

정정훈 변호사


[디스팩트 시즌3 #5_언론은 왜 성폭력 가해자 시각에 복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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