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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3 18:56 수정 : 2016.06.21 11:01

모든 외교문서에는 비밀등급이 매겨져 있다.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새로이 비밀해제된 외교문서들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현지 공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의 주된 업무 가운데는 주재국의 언론 동향을 매일 꼼꼼하게 체크해 본부에 보고하는 일도 포함된다. 연합뉴스

[토요판] 조세영의 외교클럽
(8) 문서와 자료

외교관의 하루는 ‘읽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외교관의 일상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투입하게 되는 일이 바로 문서와 자료 읽기다. 초년병 시절부터 은퇴하는 그날까지 매일 읽고 소화해야 하는 수많은 자료들로부터 결코 해방될 수 없는 운명이다. 읽는 게 싫은 사람에게 외교관이란 결코 행복한 직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 대사관에 근무하는 중견 외교관의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자. 아침 일찍 대사관으로 출근하면 자기 사무실 컴퓨터부터 켠다. 컴퓨터는 2대가 놓여 있는데 하나는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보통 컴퓨터고, 다른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 연결을 아예 막아놓은 내부망 전용 컴퓨터다.

국내 언론 스크랩 비중 높아져

내부망 컴퓨터는 전용회선으로 서울의 외교부 본부와 연결돼 있고 암호 처리한 데이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중요한 비밀문서도 안전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대사관과 본부가 주고받는 문서는 공문이라 하지 않고 ‘전문’이라고 한다. 해외공관과 원거리 통신을 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외교부에서는 일찍부터 종이로 된 공문보다는 전신기술을 이용한 전보가 주된 연락수단이었기 때문에 전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내부망 컴퓨터가 부팅되고 나면 제일 먼저 수신문서부터 확인한다. 밤새 본부로부터 어떤 지시 전문이 도착해 있는지 모니터 화면의 목록을 살펴본다. 수신문서 목록에 올라와 있는 전문들은 비밀등급에 따라 평문, 대외비, 3급 비밀과 같이 분류돼 있고, 처리해야 할 시급성에 따라 일반, 지급, 긴급과 같은 표시가 되어 있다.

중요한 내용이라면 당연히 평문이 아닌 비밀로 작성됐을 것이고, 서둘러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면 지급이나 긴급으로 왔을 테니, 비밀등급이 높은 전문과 지급, 긴급 전문을 우선적으로 살펴본다. 전문의 내용을 훑어보고 나서 그중에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판단되면 업무 시작 전이라도 바로 대사나 공사에게 전화로 보고하고 처리 지침을 받아야 한다.

본부가 대사관으로 보내는 전문에는 업무지시 이외에도 대사관이 업무상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을 통보하는 것이 있다. 본국 정부의 중요한 정책 발표 내용이나 외교부 본부의 주요 방침과 활동 동향 등인데, 분량으로 보면 지시전문보다는 이러한 통보전문이 훨씬 많다. 또한 제3국에 나가 있는 대사관이 본부로 보내는 보고전문 가운데 다른 대사관에서도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그 전문의 사본을 해당 대사관에 배포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사관이 수신하는 전문만 해도 그 종류와 분량이 상당히 많은데, 오전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또 하나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게 현지의 언론 기사 스크랩이다. 해외근무를 하면서 그 나라의 최신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재국의 신문이나 방송을 꼼꼼히 모니터링하는 일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에는 매일 챙겨 봐야 하는 조간신문이 여섯 종류나 된다.

예전에는 주일대사관에 근무하는 젊은 외교관들이 당번을 정해서 매일 새벽 사무실에 나와 6개 일간지에서 한국 관련 기사, 일본 관련 주요기사, 국제정세 관련 주요기사를 모두 오려서 스크랩으로 만든 후 본부에 팩스로 보고하고 대사관 내부에도 배포했다. 요즈음은 신문 스크랩 전담 인력을 따로 배치해서 활용하고 있고, 본부에 보낼 때도 팩스가 아니라 스캔한 파일을 내부망에 올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만드는 일본 언론 기사 스크랩은 보통 40~50쪽 전후의 분량인데 한-일 간에 중요한 외교현안이 있을 때는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꼼꼼히 읽으려면 이것도 상당한 부담이 되지만 아무리 시간에 쫓기더라도 제목만큼은 모두 훑어봐야 한다. 그중에서 중요한 기사의 경우, 즉시 일본 외무성 등 해당 부처를 통해 관련 내용을 추가로 파악해서 본부에 보고해야 한다.

아침에 읽어야 하는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외교관은 주재국의 동향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국의 동향에도 어두워서는 안 된다. 본부에서는 대변인실에서 매일 아침 일찍 국내 언론에 보도된 외교부 관련 기사를 전부 스크랩해서 내부망에 파일로 올린다. 관련 사설이나 칼럼까지 망라하기 때문에 보통 100쪽을 넘는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국내 여론이 외교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업무에서 국내 언론 스크랩이 차지하는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 근무할 때는 주재국과 관련된 내용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는지 여부가 제일 큰 관심사다. 현지의 대사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든지 영사업무에서 민원인의 불만을 샀다든지 하는 기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언론 기사 가운데 자기가 맡은 업무와 직접 관계가 없는 내용이라고 해서 제쳐놓을 수는 없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외교정책이나 최신 동향에 대해서는 한국 외교관이 가장 권위있는 대답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동남아 지역의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더라도 주재국 사람들로부터 한-미 관계나 한-중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을 수 있고, 한국의 경제동향이나 복지정책에 대해 갑자기 설명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상대방에게 참고가 될 만한 수준의 답변을 해주려면 본부에서 들어오는 전문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 스크랩도 꼼꼼히 훑어봐야 하고, 외교 분야 이외의 뉴스도 인터넷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전용회선으로 본부와 연결
출근하자마자 ‘전문’ 챙겨야
긴급 전문은 즉시 전화보고
당번 정해 새벽 출근하기도
현지 언론 모니터링도 주업무

본국 보고가 공관 평가기준
쪼개기·짜깁기 물량공세도
지명도 높은 매체는 관심대상
중요한 합의문·공동선언은
원문 읽고 행간 의미 짚어야

중국 베이징 시내 한 신문 가판대에 각종 일간지가 진열돼 있는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보고전문 개수 늘리기 경쟁

최근 언론 보도 중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비서가 가져다주는 언론 보도 스크랩을 들춰보는 일인데 스크랩의 맨 위 기사들은 외신 기사가 아니라 한국 언론 기사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은 국내 정치에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수십년 동안 외교 현장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업무 스타일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사관이 아니라 서울의 본부에 근무하고 있을 때는 읽어야 할 부담이 몇 배나 더 늘어난다. 해외근무보다 본부근무가 업무량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읽어야 할 자료도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접수되는 전문만 하더라도 대사관에서는 자기가 주재하고 있는 나라를 중심으로 한 내용에 한정되지만, 본부에는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160개가 넘는 대사관, 총영사관, 대표부로부터 24시간 쉴 새 없이 보고전문이 들어와 쌓인다.

대사관의 업무에 대한 평가기준 가운데 하나가 본부에 보고한 전문의 숫자이기 때문에 대사관들은 한 건이라도 더 많이 보고전문을 보내려고 서로 경쟁한다. 심한 경우에는 한 건으로 보내도 될 보고 내용을 두세 개의 전문으로 쪼개서 보고하거나 이미 언론에 다 보도된 내용이라든지 아주 사소한 사안까지 전문으로 보고하는 일도 없지 않다.

규모가 큰 대사관의 경우에는 1년 동안 생산해내는 보고전문이 수천통이나 될 정도이니 본부의 각 담당부서는 수신전문을 아침에 한번만 체크해서는 곤란하다. 오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금세 또 수신문서 목록이 가득 차기 때문에 오후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추가로 확인해봐야 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읽어야 할 자료도 점점 많아진다. 말단의 실무 담당자는 자기의 담당업무에 관한 전문이나 자료만 읽어도 되지만 직급이 올라가서 담당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면 읽어야 하는 자료가 덩달아 늘어난다. 물론 위로 올라가면 사소한 보고전문까지 일일이 읽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중요한 것만 추려내더라도 읽어야 할 자료는 산더미처럼 쌓인다. 장관이나 차관쯤 되면 도저히 수신전문을 직접 챙겨볼 수 없기 때문에 따로 보좌관을 두고 전문이나 자료를 챙기도록 한다.

보좌관은 아침 일찍 수신전문을 확인해 두었다가 장차관이 출근하면 밤새 어떤 전문들이 들어왔는지 보고한다. 간단한 것은 구두보고로 끝내지만 중요한 전문은 직접 읽어볼 수 있도록 핵심 부분에 밑줄을 쳐서 올린다. 이렇게 보좌관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장차관이 전문과 자료들을 직접 읽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예전에 어떤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자신은 전문을 읽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장관으로서 세세한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보는 데 집중하겠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는 전문을 직접 읽지 않는 대신 보좌관과 간부들로부터 구두로 내용을 보고받고 업무를 처리했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방침을 바꾸어서 중요한 전문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구두보고만 받는 것과 핵심 내용만이라도 직접 읽어보는 것은 역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본부에 근무하든 해외 대사관에 근무하든 아침 일찍부터 전문과 언론 스크랩을 읽어두지 않으면 업무를 제대로 쫓아갈 수가 없다. 누군가가 물어봤을 때 그런 것이 있느냐고 되묻거나 아직 안 읽어봤다고 한다면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은 많은데 오전 시간이 다 가도록 자료만 읽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선 중요한 것만 서둘러 읽고 나서 나머지는 나중에 짬을 내어 읽을 요량으로 책상 한쪽에 일단 모아두게 된다. 이렇게 쌓아둔 자료를 어떻게든 그날 일과 중에 다 읽을 수만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지 않으면 외부에서 저녁 일정이 끝나고 밤늦게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서 마저 읽거나 때로는 집으로 싸들고 가서 읽는 경우도 있다.

매일 아침에 최소한 기본적으로 읽어야 하는 자료만 해도 이 정도이니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 아닐 수 없다. 그밖에 평소에 꾸준히 읽어야 하는 자료도 끊이지 않는다. 회의에 참석하려면 두꺼운 회담자료를 미리 읽어야 하고, 중요한 사람과 면담 일정이 있으면 면담자료를 챙겨야 한다. 외교현안을 깊이 이해하고 처리하려면 참고자료도 많이 읽어야 한다. 국제무대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외교관이 되려면 <뉴욕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포린 어페어스> 등과 같이 국제적으로 지명도 있는 매체에 실린 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원문 챙겨보는 습관 길러야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반드시 원문 자료를 구해서 읽어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외교문제에 관한 중요한 합의문이 발표되거나 공동선언이 채택되었을 때 보고전문이나 언론 보도만 봐서는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대개 핵심만 요약하거나 중요 내용만 선별해서 보도하고 세부 내용의 많은 부분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프로페셔널한 외교관이라면, 그리고 장차 능력 있는 외교관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따로 발표문 원문을 구해서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그 속에서 양쪽이 서로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애쓰고 타협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행간에 숨어 있는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읽을거리들을 밀리지 않고 매일 읽어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전세계의 수많은 외교관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읽어야 할 자료들과 사투를 벌이면서 경쟁하고 있다. 외교관은 좌우간 ‘읽어야 산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중국·예멘·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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