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외교문서에는 비밀등급이 매겨져 있다.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새로이 비밀해제된 외교문서들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현지 공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의 주된 업무 가운데는 주재국의 언론 동향을 매일 꼼꼼하게 체크해 본부에 보고하는 일도 포함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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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조세영의 외교클럽
(8) 문서와 자료
외교관의 하루는 ‘읽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외교관의 일상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투입하게 되는 일이 바로 문서와 자료 읽기다. 초년병 시절부터 은퇴하는 그날까지 매일 읽고 소화해야 하는 수많은 자료들로부터 결코 해방될 수 없는 운명이다. 읽는 게 싫은 사람에게 외교관이란 결코 행복한 직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 대사관에 근무하는 중견 외교관의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자. 아침 일찍 대사관으로 출근하면 자기 사무실 컴퓨터부터 켠다. 컴퓨터는 2대가 놓여 있는데 하나는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보통 컴퓨터고, 다른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 연결을 아예 막아놓은 내부망 전용 컴퓨터다.
국내 언론 스크랩 비중 높아져
내부망 컴퓨터는 전용회선으로 서울의 외교부 본부와 연결돼 있고 암호 처리한 데이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중요한 비밀문서도 안전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대사관과 본부가 주고받는 문서는 공문이라 하지 않고 ‘전문’이라고 한다. 해외공관과 원거리 통신을 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외교부에서는 일찍부터 종이로 된 공문보다는 전신기술을 이용한 전보가 주된 연락수단이었기 때문에 전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내부망 컴퓨터가 부팅되고 나면 제일 먼저 수신문서부터 확인한다. 밤새 본부로부터 어떤 지시 전문이 도착해 있는지 모니터 화면의 목록을 살펴본다. 수신문서 목록에 올라와 있는 전문들은 비밀등급에 따라 평문, 대외비, 3급 비밀과 같이 분류돼 있고, 처리해야 할 시급성에 따라 일반, 지급, 긴급과 같은 표시가 되어 있다.
중요한 내용이라면 당연히 평문이 아닌 비밀로 작성됐을 것이고, 서둘러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면 지급이나 긴급으로 왔을 테니, 비밀등급이 높은 전문과 지급, 긴급 전문을 우선적으로 살펴본다. 전문의 내용을 훑어보고 나서 그중에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판단되면 업무 시작 전이라도 바로 대사나 공사에게 전화로 보고하고 처리 지침을 받아야 한다.
본부가 대사관으로 보내는 전문에는 업무지시 이외에도 대사관이 업무상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을 통보하는 것이 있다. 본국 정부의 중요한 정책 발표 내용이나 외교부 본부의 주요 방침과 활동 동향 등인데, 분량으로 보면 지시전문보다는 이러한 통보전문이 훨씬 많다. 또한 제3국에 나가 있는 대사관이 본부로 보내는 보고전문 가운데 다른 대사관에서도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그 전문의 사본을 해당 대사관에 배포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사관이 수신하는 전문만 해도 그 종류와 분량이 상당히 많은데, 오전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또 하나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게 현지의 언론 기사 스크랩이다. 해외근무를 하면서 그 나라의 최신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재국의 신문이나 방송을 꼼꼼히 모니터링하는 일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에는 매일 챙겨 봐야 하는 조간신문이 여섯 종류나 된다.
예전에는 주일대사관에 근무하는 젊은 외교관들이 당번을 정해서 매일 새벽 사무실에 나와 6개 일간지에서 한국 관련 기사, 일본 관련 주요기사, 국제정세 관련 주요기사를 모두 오려서 스크랩으로 만든 후 본부에 팩스로 보고하고 대사관 내부에도 배포했다. 요즈음은 신문 스크랩 전담 인력을 따로 배치해서 활용하고 있고, 본부에 보낼 때도 팩스가 아니라 스캔한 파일을 내부망에 올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만드는 일본 언론 기사 스크랩은 보통 40~50쪽 전후의 분량인데 한-일 간에 중요한 외교현안이 있을 때는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꼼꼼히 읽으려면 이것도 상당한 부담이 되지만 아무리 시간에 쫓기더라도 제목만큼은 모두 훑어봐야 한다. 그중에서 중요한 기사의 경우, 즉시 일본 외무성 등 해당 부처를 통해 관련 내용을 추가로 파악해서 본부에 보고해야 한다.
아침에 읽어야 하는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외교관은 주재국의 동향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국의 동향에도 어두워서는 안 된다. 본부에서는 대변인실에서 매일 아침 일찍 국내 언론에 보도된 외교부 관련 기사를 전부 스크랩해서 내부망에 파일로 올린다. 관련 사설이나 칼럼까지 망라하기 때문에 보통 100쪽을 넘는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국내 여론이 외교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업무에서 국내 언론 스크랩이 차지하는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 근무할 때는 주재국과 관련된 내용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는지 여부가 제일 큰 관심사다. 현지의 대사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든지 영사업무에서 민원인의 불만을 샀다든지 하는 기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언론 기사 가운데 자기가 맡은 업무와 직접 관계가 없는 내용이라고 해서 제쳐놓을 수는 없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외교정책이나 최신 동향에 대해서는 한국 외교관이 가장 권위있는 대답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동남아 지역의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더라도 주재국 사람들로부터 한-미 관계나 한-중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을 수 있고, 한국의 경제동향이나 복지정책에 대해 갑자기 설명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상대방에게 참고가 될 만한 수준의 답변을 해주려면 본부에서 들어오는 전문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 스크랩도 꼼꼼히 훑어봐야 하고, 외교 분야 이외의 뉴스도 인터넷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전용회선으로 본부와 연결출근하자마자 ‘전문’ 챙겨야
긴급 전문은 즉시 전화보고
당번 정해 새벽 출근하기도
현지 언론 모니터링도 주업무 본국 보고가 공관 평가기준
쪼개기·짜깁기 물량공세도
지명도 높은 매체는 관심대상
중요한 합의문·공동선언은
원문 읽고 행간 의미 짚어야
중국 베이징 시내 한 신문 가판대에 각종 일간지가 진열돼 있는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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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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