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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9 18:22 수정 : 2016.08.09 18:55

황상철
국제뉴스팀장

세계지도를 살펴보면 땅덩어리의 위치가 좋아 벼슬하는 나라들이 있다. 터키는 누가 봐도 명당이다. 흑해와 에게해·지중해 사이에 자리잡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다. 패권 쟁탈을 하던 국가들은 터키의 환심을 사야 했다. 영토의 3% 정도가 유럽 땅인 터키는 아직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아니다. 그런데도 1952년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됐다. 냉전 때 소련을 봉쇄하려고 미국이 서둘러 터키를 끌어안았고, 지금도 미국이 가져다 놓은 핵무기가 많다.

영원한 동맹국일 줄 알았던 터키 때문에 요즘 미국의 고민이 깊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9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미국은 애가 탄다. 러시아와 터키는 크림전쟁(1853~56년) 이후 철천지원수가 아니었던가. 이게 다 지난 7월15일 한여름 밤의 꿈처럼 끝난 터키 군부 일각의 쿠데타 실패로 빚어진 일이다.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이니만큼 쿠데타를 둘러싼 ‘음모론’이 빠질 리 없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쿠데타의 배후로 미국을 의심한다. 에르도안은 쿠데타 시도를 ‘외부에서 쓴 각본에 따라 터키의 배우들이 행동한 것’이라며 외국 정부가 조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딱 꼬집어 ‘미국’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친정부 매체들은 더 구체적으로 배후세력을 지목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존 캠벨 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우드로 윌슨 센터의 헨리 바키 중동프로그램 책임자 등이다.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바키가 이스탄불 근처의 섬에서 학자들과 워크숍을 했는데, 이 워크숍이 비밀모임이고 그가 여기저기 수상한 통화를 했다는 주장이다.

정반대의 음모론도 있다. ‘쿠데타 시도 실패로 누가 가장 이득을 봤느냐’를 한번 따져보자. 러시아와 에르도안 아니냐는 것이다. 러시아 극우세력의 정신적 지도자인 알렉산드르 두긴이 쿠데타 전에 앙카라에서 에르도안과 가까운 이들을 접촉했고, 러시아가 쿠데타를 미리 감지하고 이를 에르도안 쪽에 알려줬다는 보도가 있다. 러시아가 쿠데타 진압에 가장 큰 도움을 줬다고 터키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터키 국민 3명 중 1명은 쿠데타를 자작극으로 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쿠데타 시도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고 쿠데타 실패 이후 에르도안 정부가 광범위한 숙청작업을 신속하게 벌이는 것도 수상쩍다. 사전에 ‘숙청 리스트’를 만들어놓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에르도안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쿠데타군 편을 든다”고 미국·유럽에 화를 낸다. 미국·유럽도 에르도안이 탐탁지 않다. 그렇다고 ‘뒤통수를 때리고 러시아에 빌붙는다’고 비난을 퍼부을 수도 없다.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이 최근 터키를 찾았고, 존 케리 국무장관도 조만간 터키를 방문해 에르도안 달래기에 나설 예정이다. 유럽연합 쪽도 ‘우리의 이해가 부족했다’며 꼬리를 내린다. 에르도안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미국으로선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차질을 빚고, 유럽연합은 대량 난민유입 사태를 맞게 된다. 크림반도 합병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도 이번 기회에 터키를 확실히 붙잡아 두려 한다. 러시아가 지원하는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유지하는 데도 터키의 묵인·방조가 필요하다. 다들 터키의 마음을 잡으려 안달한다. 땅의 위치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무슨 비법이라도 있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욕보는 ‘형제의 나라’에 한수 가르쳐줘도 괜찮을 성싶다.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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