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불법증거 보고도 몸 사리는 선관위는 필요 없다 |
문상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24일 새누리당의 ‘공천 개입 녹취록’ 사건에 대해 “녹취 내용만으론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자체 조사에 나설 뜻이 없음을 밝혔다.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청와대 전 정무수석 등의 발언은 누가 보더라도 당내 공천에 개입해 ‘압력’을 행사한 명백한 증거인데도 선관위가 이런 태도를 나타낸 것은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정리하면, 18대 경기 화성갑 의원을 지낸 김성회 전 의원은 2013년 10·30 재보선에서 서청원 의원에게 지역구를 넘겨준 뒤 그해 12월 낙하산으로 지역난방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이 공사를 집중적으로 감찰했고, 친박 실세들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는 등의 협박과 함께 김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길 것을 강권해 관철했다.
선거법 제237조 5항은 당내 경선에서 ‘협박’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경선의 자유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제57조의 5는 후보 사퇴 등을 목적으로 이익을 제공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게 돼 있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최경환·윤상현 의원과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의 발언은 237조 5항에 해당하는 불법행위일 가능성이 짙다. 재보선 지역구 양보의 대가로 난방공사 사장 자리를 줬다면 57조의 5에 딱 걸린다. 총선 공천에 활용할 목적으로 총리실에 부당한 감찰을 지시했다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수 있다.
현기환 전 수석 등이 이구동성으로 ‘브이아이피의 뜻’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범법행위를 지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대통령의 이름을 판 것이라면 청와대는 최경환·윤상현·현기환 등 친박 실세들에 대한 엄중 문책을 지시해야 마땅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다.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면 심각한 문제임에도 청와대나 여당은 ‘당권 경쟁의 부산물’이란 안이한 태도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이다. 그만큼 선관위의 책임은 막중하다. 명백한 불법선거 증거가 만천하에 공개됐는데도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선관위라면 존재 의미가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