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25 11:40
수정 : 2017.09.2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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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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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시행 1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인터뷰
“청탁금지법은 거절을 위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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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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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지난 1년을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냈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대부분 고사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을 응원하든, 힐난하든 본인의 이름이 불려나왔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김영란 메뉴’를 발견하고 신분이 들통날까봐 멀리 돌아간 일도 있었다. 청탁금지법 시행 1년(9월28일)을 앞두고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하필 법에 제 이름까지 얹혀져서 ‘꼭 이 법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이 법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처벌 아닌 거절 위한 법 “누군가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거절하기 쉽도록 매뉴얼을 제공하는 법.” 청탁금지법을 처음 제안할 때부터 김 교수는 법의 취지를 이렇게 강조해왔다. 상급자가 위법한 지시를 할 때 “감히 거절을 못하는 하급자를 위한 법”이라고도 했다. “이 법은 ‘부정청탁’을 받았을 때 ‘신고하는 절차’를 마련한 법이에요. 절차가 있으면 윗사람들도 조심할 수밖에 없죠.”
청탁금지법이 제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제 사례’도 많았다. 최순실씨 딸 부정입학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여대 교수들에게도 청탁금지법은 방패막이가 될 수 있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정유라씨 경우처럼 권력이 입시나 학점에 개입하려 할 때, (교수들이) ‘(청탁금지법상) 문제가 있다’고 인식할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거절할 수 있었을 겁니다.”
■ ‘3-5-10’? 더치페이하라는 뜻 최근 추석 연휴와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식사·선물·경조사비 인정 금액인 이른바 ‘3-5-10’ 조항이 적절한지 논쟁을 벌이고 있다. 국회엔 이 조항을 ‘10-10-5’로 고치자는 개정안과 농수축산물과 전통주를 청탁금지법 대상 품목에서 제외하자는 개정안 등이 올라와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최근 “연말 안으로 청탁금지법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 검토해서 필요하고도 가능한 대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권익위가 여론을 수렴해 적절한 수준으로 적용하면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논의가 ‘3-5-10’ 조항에 모아지는 데에는 부정적이었다. 그는 “‘주민 반상회에 참석하라’가 원칙인데 불참에 벌금을 매기면 사람들이 ‘벌금을 불참할 권리’로 인식하는 역효과가 생긴다”며 “공무원과 밥을 먹을 땐 더치페이를 하거나 되도록 먹지 말라는 게 원칙인데, 그 범위(3-5-10만원) 안에서는 허용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다보니 금액이 중요해져버렸다. 이 법의 본질이 그게 아닌데 금액 논쟁으로 끝나버리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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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 서강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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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조금 더 단순화해야 한우 농가, 화훼·요식업계 등이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매출 감소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 대해 김 교수는 “법 시행 전까지 그분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 안타깝다”며 “길게 보면 언젠가는 소비행태가 바뀌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하루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탁금지법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개정 방향은 ‘단순화’였다. ‘직무관련성’ 등 몇몇 개념이 불분명하고, 부정청탁에 해당되는 행위 역시 나열식으로 규정돼 법망을 피해갈 여지가 크다는 판단이다. 김 교수는 “선생님께 ‘카네이션 한 송이도 못 주느냐’고 법이 비판받기도 했지만, 한 여중생은 ‘카네이션도 못 주는 아이들이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단순한 원칙을 따르면 혼란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박수지 고한솔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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