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형사고소 대비해 검사 친구에 ‘보험’ 들어
고소장에 ‘검사에 1500만원 입금’ 적혀 일 틀어져
김 검사, 겉으론 수사 무마 속으론 본인 살길 모색
김씨, 구속영장 청구되자 함께 자폭 선택
김형준 서울고검 부장검사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단장으로 활동하던 2015년 12월3일 당시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기관투자자 비리 수사를 놓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형준 부장검사를 ‘뒷바라지’하던 고교 동창 사업가 김아무개(구속)씨는 위기의 순간에 믿었던 ‘보험 관계’가 작동하지 않자 ‘함께 죽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지난달 말 <한겨레>와 만나 “나도 나쁜 놈이지만, 검사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검사는 살고 나만 혼자 죽을 수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 부장검사와 그의 힘을 이용하려던 사업가 김씨의 부적절한 관계는 둘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파국을 맞았다. 중국 샤오미사 제품 등을 유통하던 ㅈ사의 실질 오너인 김씨는 지난해부터 사업이 위태로워질 것에 대비해 두 가지 조처를 취했다고 한다. 하나는 김 부장검사와 마찬가지로 고교 동창 관계인 한아무개씨를 회사 대표로 앉힌 것이다. 이는 회사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을 한씨한테 떠넘기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김 부장검사에게 지속적인 술접대 등을 통해 ‘보험’을 드는 것이었다. 김씨는 <한겨레>에 “법적인 책임은 한씨가 지고, 여의치 않을 경우 김 부장검사에게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파국은 지난 3월 시작됐다. 그동안 잘 버텨오던 그의 사업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시세보다 싼 가격에 샤오미 물건을 공급하겠다고 속여, 업체들에 50억원의 피해를 안겼다”고 나와 있다. 사기를 당한 피해 업체들의 고소가 시작됐다. 예상대로라면 ‘바지사장’인 한씨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한씨가 본인도 피해자라며, 실질 오너인 김씨를 지난 4월19일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한 것이다. 이 고소장에는 회사의 핵심 관계자만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업가 김씨가 조성한 비자금 12억원 가운데 1500만원이 다른 사람 계좌를 통해 김형준 부장검사에게 건너갔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애초 계획대로 ‘보험’이 작동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김 부장검사는 김씨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검사에게 주어진 ‘미션’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인 김씨를 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부적절한 돈거래 의혹도 말끔히 처리해야 했다. 김 부장검사는 사건 무마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4월에는 자신의 동기가 차장검사로 있는 고양지청에서 수사가 진행되도록 ‘셀프 고소’를 유도했다. 6월에는 서울서부지검 소속 부장검사는 물론 수사 검사와 밥자리를 만들어 사건 무마를 시도했다. 7월에는 검사장 출신 전관 변호사인 강아무개 변호사를 김씨의 변호사로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두 가지 미션 중 어느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 상황에서, 김 부장검사는 최종적으로 본인만 사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검사는 김씨에게 “내가 살아야 너도 산다”며 검찰 조사에서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거짓 진술 할 것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서부지검과 고양지청 등에 찾아가서는 “동창 사업가가 나를 팔고 다닌다”며 엄정한 수사를 요구했다. 일종의 ‘이중플레이’였다.
김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 부장검사에게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며 좀더 적극적으로 수사 무마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김씨는 6월께에는 대검찰청 감찰본부에 낼 서류를 준비하는 등 김 부장검사를 강하게 압박했다.
김 부장검사와 김씨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지난달 하순께다. 김씨를 4차례 조사한 서울서부지검이 26일 김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사전구속영장의 범죄사실에는 김 부장검사의 비위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김씨는 <한겨레>에 “한창 조사가 진행되던 상황에서 왜 나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는지 이유는 뻔했다. 검찰은 나를 구속해 내 입을 막고, 김 부장검사에 대한 의혹을 덮어버리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맹 관계’가 깨지자 김씨는 그동안 준비해온 일을 진행했다. 그가 <한겨레>에 관련 내용을 제보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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