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12 20:13
수정 : 2016.09.12 23:09
번지는 ’핵무장론’, 현실성 없는 이유
① NPT 위반으로 국제적 고립 자초
② 미국 ’확장억제’ 전략 흔들림없어
③ 핵무장 선결 ’전작권 환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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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의원모임'(약칭 핵포럼) 소속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 등을 초청해 연 긴급간담회에서 사드배치 예정 지역인 경북 성주가 지역구인 이완영 의원이 한 장관에게 인사를 청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선 "현실적 제약 요인을 고려해 가능한 모든 핵무장 수준의 프로그램을 실용화시키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모아졌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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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엔 원유철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도가 핵무장론을 제기했는데, 이번엔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를 비롯해 김무성·김문수·오세훈 등 당내 유력 대선후보들까지 가세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31명의 새누리당 의원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 모임’(핵 포럼) 명의로 12일 “핵무장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대한민국과 국민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짐짓 결연한 성명까지 발표했다. 새누리당의 핵무장론은 “자위권 차원의 독자적 핵무장”(핵 포럼 성명)에서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까지 진폭이 있지만, 본질은 같다. 핵으로 핵을 막자는 주장이다.
적절한 대응일까? 현실성은 있을까? 외교·안보 분야 전직 고위 인사들은 “한국도 북한처럼 세계의 왕따가 되겠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북핵 문제를 다룬 경험이 많은 한 전직 고위 인사는 “새누리당의 핵무장론자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실제 궁리가 있을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북핵 대응 정책 실패에 쏠릴 비판 여론을 흐트러뜨리려는 정략적 성동격서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한국의 핵무장은 국제 비확산 레짐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물론 한·미 동맹 차원의 원자력협정 위반이다. 1992년 노태우 정부가 국제사회에 공약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파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핵무장은, 북한처럼, 한국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기를 포기하고 ‘핵을 가진 국제 왕따’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핵무장을 하려면 무기급 우라늄 농축(90%)을 하거나 플루토늄을 재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5년간의 협상 끝에 42년 만에 개정돼 지난해 발효(11월25일)된 새 한·미 원자력협정은, 한국의 비군사적 목적의 독자적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개정 협상 때 꼭 얻어내려 한 ‘파이로프로세싱’(핵연료 재처리 기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사실 미국 정부는 이미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6일 라오스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확장억제를 포함한 미국의 한국 방위공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게 그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발표한 개인 성명에서도 “(박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확장억제’란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고도 미국 본토와 오키나와·괌을 비롯한 태평양의 미군기지에 전개한 전략자산으로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뒤집으면, ‘미국이 확실하게 보호할 테니 한국은 핵무장을 꿈도 꾸지 마라’는 전략적 견제다. 당연하게도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국 재배치 방안도 배제한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하자는 얘기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핵무장론은 한·미 동맹을 깨자는 소리”(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미 동맹 파기 위험과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무릅쓰고도 핵무장에 나서면 어떻게 될까? 북한처럼, 경제·외교·군사적 고립과 ‘암흑시대’로의 후퇴가 한국인을 기다린다.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99.5%(2015년 한국은행 기준)에 이르는 무역국가다.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현재 수준의 삶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더구나 한국은 에너지 자원 국외 의존도가 96~97%에 이르는 에너지 약소국이다. 24개 핵발전소를 이용한 핵발전 비중이 31.5%다. 핵에너지 의존도 세계 4위, 전력 소비량 세계 10위인 ‘에너지 약소국+다소비국’, 이게 한국 현실이다. 한국은 핵발전에 필요한 우라늄을 100% 수입하는데, 핵무장에 따른 국제제재는 이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는 만성적 ‘블랙아웃’(대량 정전사태)이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핵무장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의 모든 핵발전소 사용후연료저장소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는데, 24시간 가동되며 3분 단위로 감시 영상을 국제원자력기구에 보낸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자리에서 1982년에 극소량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한 사실이 확인됐을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까지 주장하며 가장 강하게 문제삼은 나라가 미국·영국·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 등 전통적 우방국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의 핵무장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대목은, 이들이 핵무장을 주장하면서도 미국에 맡겨놓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환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작권 없는 핵무기는, 격발 장치가 없는 총과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핵무장론을 ‘정략적 농담’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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