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8.29 19:14 수정 : 2019.08.29 22:01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정농단 5가지 결정적 장면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박근혜(67)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관한 사법적 판단이 29일 사실상 일단락됐다. 관련 의혹이 제기된 지 3년여 만이다. 정체 모를 수상한 재단과 대통령의 40년지기에게서 시작된 의혹은 청와대와 비선실세 가문, 정치권력과 유착한 재벌 대기업, 권력의 하수인이 된 공무원을 망라한 잔혹한 대하드라마였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법적 심판을 거쳐 사법 단죄에 이르기까지 국정농단 사건의 결정적 장면 다섯가지를 꼽아봤다.

■ 한겨레·제이티비시·티브이조선의 ‘좌우합작’

“추측성 기사다. 언급할 가치도 못 느낀다.” 2016년 9월20일 <한겨레> 1면 기사에 대해 청와대는 이렇게 답했다. <한겨레>는 재벌들이 수백억원을 투자한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배후에 최순실(63·최서원으로 개명)씨가 있고, 그가 단골 마사지센터 원장을 케이스포츠재단 이사장 자리에 앉혔다고 보도했다. ‘비선실세’ 최씨의 존재가 수면 위로 본격 드러난 것이다.

국정농단은 <한겨레> <티브이(TV)조선> <제이티비시>(JTBC)의 보도로 그 실마리가 드러났다. 그해 7~8월 티브이조선은 대기업들이 정체 모를 두 재단에 수백억원을 ‘묻지 마 지원’했는데, 여기에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돼 있다고 보도했다. 제이티비시는 10월24일 최씨가 사용한 태블릿피시(PC)를 입수해 최씨가 대통령 연설 전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보도를 내놨다. 국민적 공분이 폭증했다. 아무 권한도 없는 한낱 개인이 국정에 관여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원종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전대미문의 비선실세 국정 개입이 드러나자, 청와대도 더는 부인하거나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1차 대국민담화 발표(10월25일)부터 검찰의 최순실 의혹 특별수사본부 구성, 독일에 있던 최씨의 귀국, 안종범 수석과 정호성 비서관 등 청와대 주요 인사 긴급체포, 박 대통령 피의자 입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검 구성(12월1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 전국 232만여개의 촛불 “박근혜를 탄핵하라.”

2016년 12월3일 광화문에 모인 170만명(주최 쪽 추산)을 포함해, 전국에서 시민 232만명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촛불을 든 채였다. 그해 10월 시작된 촛불집회 사상 역대 최다 인원이었다. 시민들은 끝까지 버티겠다는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임기 단축을 포함해 진퇴 문제는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와 미덥잖은 국회에 분노했다. ‘하야’ ‘퇴진’ 구호가 ‘탄핵’으로 발전한 시점이다. 12월9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압도적 찬성(234표)으로 가결했다.

최순실·정유라씨 일가가 권력을 등에 업고 누려온 특혜는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낡은 대한민국을 상징했다. 비선실세 딸에게 교수들은 학점을 갖다 바쳤고, 대기업 삼성은 말 구입비 수십억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학사 비리에 분노한 이화여대 학생들은 최경희 총장을 끌어내렸다.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를 향한 분노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정경유착 해소 등 ‘적폐청산’을 향한 열망으로 진화했다.

10월29일 3만여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183일, 23차례에 걸쳐 매주 토요일 전국 각지에서 이어졌다. 누적 인원만 1700여만명. 주말을 반납하고 매주 광장을 찾은 이들이 축제와 같은 시위 문화를 만들었다. 이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검(국정농단 특검)을 향한 응원이자,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하게 된 헌법재판소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와 동시에 광화문 세종대로를 사이에 두고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 헌법재판소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결정을 읽어 내려갔다. 헌재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공정한 직무수행을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해선 안 된다는 헌법정신을 확인한 결과였다. ‘8 대 0’ 헌재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파면된 첫 대통령이 됐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광장을 지켰던 촛불시민들이 일군 승리였다.

탄핵이 끝은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법치’를 외면한 국정농단 연루자들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절차가 남았다.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 특별수사본부(1기) 수사를 시작으로, 국정농단 특검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2기)를 거쳐 6개월 넘게 수사가 진행됐다.

122명, 역대 최대 규모의 특검이 벌이는 70여일간의 수사에 국민적 응원이 쏟아졌다. 청와대와 행정부는 물론, 삼성·롯데·에스케이(SK) 등 재계와 문화계·교육계로 수사 폭이 확대됐다. △정부 국정철학과 반대되는 문화예술계 인사 지원 배제 △이화여대 입학·학사비리 △세월호 7시간 관련 청와대 비선진료 의혹 등이 제기됐다. 특히, 삼성과 롯데 등 대기업이 기업 편의를 바라고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등에 거액의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 ‘겁박당한 피해자’ 이재용, 353일 만의 석방

책임자는 줄줄이 구속됐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13명이 구속됐고, 30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일찌감치 구속된 최순실씨(2016년 11월3일)에 이어, 2017년 2월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월31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두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돼 결국 불구속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국정농단 관련자 재판 수십건이 바쁘게 돌아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모의·실행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2017년 8월 이 부회장 1심 재판부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을 비판하면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5일 이 부회장은 석방됐다. 구속 353일 만이었다. 2심에서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1심과 달리 그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2심은 이 부회장이 최고 정치권력자인 대통령의 ‘겁박’에 못 이겨 수동적으로 뇌물을 건넸다고 판단했다. ‘경영권 승계작업’도 인정하지 않았고, 뇌물 인정액도 36억여원으로 대폭 줄었다. 이 부회장은 “더욱 세심히 살피겠다”는 말과 희미한 미소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 서울중앙지법 “피고인 박근혜, 징역 24년 선고”

“다시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4월6일 1년여간 숨 가쁘게 달려온 박 전 대통령 재판 1심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의 실형과 180억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혐의 18개 가운데 16개에 유죄 판단이 내려졌다. 232억원의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됐다. 그러나 ‘승계작업 등 이재용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며 삼성 관련 제3자 뇌물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피고인은 자리에 없었다. 법정에서 꾸벅 졸지언정 출석은 했던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부터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며 모든 재판을 ‘보이콧’했다.

2심 재판부는 형량을 더 늘려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원을 선고했다. 1심과 달리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지원해달라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면서 뇌물인정액이 더 늘었다. 최순실씨는 지난해 2월 1심에서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을, 2심에서 박 전 대통령과 같이 징역 20년에 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남근 부회장은 이날 대법원 선고 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권력자가 국민이 쥐여준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고자 한 대규모 범죄를 국민 저항과 사법부 판단을 통해 엄단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 뉴스룸톡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