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30 22:28
수정 : 2019.08.3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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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6일 충남 아산에 위치한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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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 부정청탁·적극적 뇌물’ 판결에
자의적 해석으로 파기환송심 대비
실제 정부 지원 속 삼성물산 합병
뇌물 50억 넘어 실형가능성 큰데
“말 3마리 구입비는 본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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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6일 충남 아산에 위치한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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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법원 판결이 아쉽지만, 삼성이 어떤 특혜를 취득하지도 않았음을 인정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지난 2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직후 이 부회장 쪽 이인재 대표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가 한 말이다. 이 변호사는 “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는 무죄가 확정됐다. 뇌물액을 늘린 결정적 요인이 된 말 3마리 구입비도 ‘사안의 본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삼성 쪽 주장은 대법원 판결 취지를 과도하게 축소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판단의 핵심이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판단으로 이번 사건의 구도가 180도 바뀌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겁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뇌물을 건넨 사건’이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바라고,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공여자’로 인정했다. 실제 이 부회장 승계작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무리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이 부회장 쪽의 “어떤 특혜도 없었다”는 주장이 간과한 사실이다.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받아 챙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대법원 판결문을 살펴보면, 대법원 의중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법원은 최씨가 삼성그룹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요구한 혐의(강요)에 무죄 판단을 내리면서도 이런 판단을 분명히 했다. “신동빈(롯데 회장)과 이재용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따른 것은, 이에 편승해 직무와 관련한 이익을 얻기 위해 (대통령의) 직무행위를 매수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라는 부정청탁을 정면으로 인정했다. 부정청탁은 이 부회장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가벌성 요소이자 양형 사유”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쪽은 형이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에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는 점에 의의를 두면서, 원심에서 이미 살시도 등 말 3마리의 무상 사용을 뇌물로 인정했기 때문에 말 3마리 구입비(34억1797만원)를 뇌물로 인정한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말 3마리의 뇌물 인정 여부는 이 부회장 신변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이 말 3마리 구입비를 뇌물로 인정하면서, 이 부회장의 최종 횡령액은 36억원(항소심)에서 87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른바 집행유예 경계선인 ‘50억원’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삼성 쪽의 지상목표는 이 부회장의 구속을 막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말 3마리 가격의 뇌물 인정 여부에 상당한 신경을 썼을 것”이라며 “삼성이 겉으로는 별게 아니라고 하지만 가장 아픈 대목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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