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7 21:17
수정 : 2018.03.28 07:51
북-중 정상회담 역사
2000년 5월 남북정상회담 보름전
전격적으로 북-중 정상회담 가져
한-중 수교로 삐걱거린 관계복원
10월엔 북-미 고위급 교차 방문
북-미 정상회담 문턱까지 진행
보수파 부시 대선 당선으로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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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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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으로 4월 말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동북아 정세가 더욱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북-중 정상회담에 이어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목전까지 치달으며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의 결정적 기회였던 2000년을 떠올리게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여러모로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0년 5월 방중과 닮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보름 남짓 앞둔 2000년 5월29일 1박2일 일정으로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주석 등 중국 지도부와 여러차례 회담한 바 있다. 이로써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삐걱이던 북-중 관계는 전면 복원됐다.
당시에도 김정일 위원장의 전용기차가 베이징에서 목격됐고, 국빈 숙소인 조어대에 국기를 달지 않은 고급 승용차 수십대가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들락거리는 장면도 공개됐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공식 확인을 해주지 않아 김 위원장 방문 사실은 나중에야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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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중국 베이징에서 무장한 경찰들이 국빈 숙소인 조어대(댜오위타이)로 향하는 도로를 막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26일부터 이날까지 인민대회당과 조어대 등 베이징 중심가에선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베이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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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관계 복원에 이은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김정일 위원장은 북-미 대화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2000년 7월 독일 베를린에서 북-미 외교장관 회담 예비접촉에 이어 같은 달 타이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백남순 북 외무상의 회담이 성사됐다.
이어 같은 해 10월9~12일 당시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던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북-미 양쪽은 △적대관계 종식 △평화보장 체제 수립 △경제교류·협력 △핵·미사일 문제 해결 등을 뼈대로 한 ‘조-미 공동코뮈니케’에 합의했고, 올브라이트 장관이 10여일 뒤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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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에 잡힐 듯했던 북-미 정상회담은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보수 강경파의 지원을 등에 업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무산됐다. 당시 방북 정상회담을 준비했던 클린턴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년 8월에야 억류된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할 수 있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 뒤에도 북-중 관계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특히 지난해 ‘4월 위기설’을 전후로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에 동참하자, 북한은 “조-중 관계의 ‘붉은 선’을 넘고 있다”, “파국적 후과도 각오해야 할 것”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이에 맞서 중국 외교부도 “공정한 입장”에서 북-중 관계를 처리했다고 맞받고, “북한의 핵개발은 북-중 상호원조조약 위반”이라는 주장이 중국 언론에 등장하는 등 북-중 간 설전이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악화일로로 치닫던 북-중 관계는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쪽에 보낸 축전 내용의 변화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6월30일 중국 공산당 창건 95주년에 즈음해 시진핑 주석에게 보낸 축전에서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조중 친선”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중 관계가 파열음을 내던 지난해 10월25일 중국 공산당 제19차 대회를 기념해 보낸 축전에선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두 나라 인민들의 이익에 맞게 발전되리라고 확신한다”고 썼다. 전통적 혈맹인 북-중 관계를 ‘이익’을 나누는 이웃나라 정도로 격하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990년대 최악의 식량난으로 인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북-중 관계가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으로 풀리면서 2000년 북-중, 남북, 북-미 관계가 선순환 구도를 이뤘다”며 “북한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북-중 관계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복원시킨 것은 북한판 ‘등거리 외교’ 선언으로, 동북아 각국이 18년 전 놓친 냉전체제 해체의 결정적 기회가 다시 만들어진 셈”이라고 짚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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