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의 ‘17년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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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무실에서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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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로 삶이 얼마나 불행해졌는지를 살피는 것보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상처를 회복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자들을 하나의 모습으로 단정 짓는 시선 역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무실에서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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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의 휴대전화엔 ‘예쁜 이름’ 목록이 저장돼 있다. 재판이 끝나면 이름부터 바꿔야지 했다. 오랫동안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 “은희씨 힘내세요” 응원을 듣게 되면서, 싫었던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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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자책하고 책망했다
언젠가 그 일을 말했을 때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
열심히 더 부지런히 살았다 어른 될 무렵 ‘조두순 사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2012년 처음 경찰서를 찾았다
고소할 수는 있다 했지만…
증인도 증거도 찾을 수 없어 ―어제 춘천에 혼자 다녀오셨잖아요. 법률 전문가들이 있는데 은희씨가 그 일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싶었어요. “저는 그 사람 죄가 낱낱이 밝혀지길 원해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데, 그게 거짓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오기가 생기니까 자꾸만 뭐라도 찾게 돼요. 어떻게 보면 검사나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다른 사람이 자료를 찾는다 해도 제가 확인해야 하니깐, 제가 하는 게 나아요. 한편으로는 자잘한 일은 제가 하고 변호사·검사한텐 큼직큼직한 것만 맡기면 그분들이 제 사건에 더 많은 신경을 써줄 거라 생각했어요. 제 사건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피고인 처벌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7일 춘천에 정말 가기 싫었다는 걸, 블로그 글을 통해 뒤늦게 알았어요. 전날, 선고가 미뤄졌다는 연락을 받고 많이 힘들었나요? “2016년 7월 고소장을 제출하고, 2017년 10월 선고가 나오기까지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제 기억과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피고인 쪽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할 자료를 찾아 헤맸어요. 피해 날짜가 맞지 않는다고 하면, 제 말이 맞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옛날 기사를 찾고, 여기저기 공공기관이나 병원에 전화하고, 아직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또다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리 힘들었나 봐요.” ―1심에서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됐을 때 마음이 어땠을지, 저는 짐작조차 못하겠어요. 이번 재판이 은희씨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재판에서 졌으면 속상하고 슬펐을 텐데, 이겼을 땐 그저 ‘할 일 했다’ 그런 느낌밖에 없었어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고소를 한 건, 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서 처음엔 이기고 지는 게 상관이 없었죠.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만으로도 내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것 같으니, 고소하게 해달라. 이 사람 잘못을 어디에라도 알리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다 재판이 시작되니까, 이기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였죠. 1심 선고 하나로 17년 동안 힘들었던 걸 보상받는 느낌이 있어요. 70% 정도는 치유가 되는 느낌. 그동안 저는 피해를 알리지 못한 제 스스로를 자책하고 책망해왔거든요. 재판을 통해 ‘내 잘못이 아니고 그 사람이 잘못한 게 맞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준 거잖아요. 지금이라도 문제를 제기한 제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간을 통해 치유가 많이 된 것 같아요.” 내 말보다 그의 말을 믿을 것 같았다 김은희는 초등학생 때부터 2015년 6월까지 테니스 선수였다. 갓난아기를 유난히 좋아해 신생아실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 김은희는 큰 키 덕분에 운동선수의 길로 접어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코치에게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있었다. 어느 날 코치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만 아는 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합숙훈련이 잦았던데다, 기합이나 훈련을 빌미로 그를 때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강요된 침묵을 깨기 힘들었다. 학부모나 다른 교사와 사이가 좋았던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잘못했다가는, 어른들로부터 더 크게 혼날 것만 같았다. ―오래전 일을 왜 지금에서야 이야기하느냐,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그땐, 심각한 피해를 피해로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초등학생한테 ‘손 들고 횡단보도 건너’, ‘줄서서 가’ 같은 지켜야 할 도덕이나 질서만 알려주지, 무엇이 범죄인지 죄악인지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1심 판결문을 보니 ‘2002년 피고인이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돌아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대목이 나와요. 학교에서는 은희씨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어느 날 ‘김은희 학생은 교장실로 오세요’ 교내 방송이 나왔어요. 교장실에 가니까 선생님이 ‘코치가 무릎에 앉혔는지. 너를 만졌는지’ 그런 걸 물어봤어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일 없다고 둘러댔죠. 그러다 ‘나만 알고 있을 테니 이야기해보라’는 말에 딱 한 글자로만 답했어요. ‘예’. 그날 집에 갔는데 부모님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묻더라고요. 내일 교감, 교장 선생님이 집에 온다면서…. 선생님들하고 마주칠까봐 그날 집에 늦게 간 기억이 나요. 다음날 학교에 가니까 코치가 사라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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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실 간호사를 꿈꾸던 시절. 4~6살 무렵인 거 같다. 김은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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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전국체전 시합 준비를 하던 때. 김은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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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사진. 김은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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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얼굴을 목격한 뒤
일상은 뿌리째 흔들렸다
운동부 선후배·선생님…
내 말을 믿게 해준 사람들 위급시 심폐소생술 배워도
옆 사람 쓰러지면 허둥지둥
성폭력 피해 막상 닥쳤을 땐
어른도 아이도 서투를 수밖에
“미흡했다고 합리화 말아달라” 침묵을 종용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경찰에 고소장을 낸 김은희는,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비리신고센터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도 피해를 신고했다. ㅇ초등학교를 그만둔 코치는 기소 전까지 여러 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해왔다. 스포츠비리신고센터는 문체부가 2015년 스포츠 비리·불공정 사안에 대한 제보를 받고, 조사를 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다. 2008년 여성 선수들이 겪고 있는 성폭력 실태가 드러나면서 2009년 대한체육회는 스포츠인권센터(옛 스포츠인권익센터)를 마련했다. - 두 기관에 신고한 내용은 어떻게 처리됐나요? “문체부나 대한체육회에서 조사해 징계 결과가 나오면 법정에 내려고 했어요. 저는 대한체육회에 신고를 하면 거기서 조사와 징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대한테니스협회같이 종목별 산하기관(1차 징계의결기관)에 이첩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신고 15일 뒤에 대한테니스협회에 사건이 넘어갔는데, 그 사실도 며칠 뒤 체육회에 전화를 걸어서 알게 됐고요. ‘코치가 연락이 안 된다’며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1심 선고 이후 지난해 말 ‘영구제명’ 징계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문체부에선 재판 결과를 보고 징계하겠다고 했는데, 1심 선고 이후에도 감감무소식이었고요.” 문체부 체육정책과 관계자는 “훈령인 ‘스포츠비리신고센터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수사나 감사 중인 사안은 처리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에 따라 사건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너무 오래된 사건인데다, 스포츠공정위원회 조사 권한이 협소하다. 증거가 명확해야 징계를 할 수 있어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김은희 사건과 관련해, 여성 스포츠인과 체육학자들이 모인 ‘100인의 여성체육인’은 19일 성명을 내어 “체육계에 만연한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관련 행정기관의 진정성 있는 조사와 관심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23일이 대학 졸업식인데, 지도자가 될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2016년 5월 이후, 학교도 그만두려 했어요. 왜 내가 같은 직종에 있어야 하지? 그런 생각이었는데, 교수님이 잡으셨어요. 네 삶을 계속 가야지, 다른 사람 때문에 흔들리는 건 안 된다. 고민이 길어지면서 졸업까지 오긴 했어요. 고소를 할 무렵 이민도 준비했어요. 미국에 외가 친척분들이 계시거든요. 도피처가 있으니까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안 되면, 뜨자. 물리치료 하면서 살면 되지 뭐, 그렇게. 그런데 오랫동안 품어온 꿈과 목표가 사라지니까 그것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테니스계로 돌아가면 사람들 시선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또 그렇게까지 해서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진로인 것 같아요.” 김은희는 언론에도 피해를 알렸다. 최근 성폭력 피해 고발자를 찾는다는 어느 프로그램에도, 지난해 이미 제보를 했다. 그동안 언론은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킬 만한 ‘충격적’인 사건에만 취재에 열을 올리고 ‘피해가 얼마나 처참한지’, ‘피해자가 얼마나 불행해졌는지’ 중계하기에 바빴다. 여론에 따라 법과 처벌이 강화돼 왔지만 피해자들이 꽁꽁 숨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 언론도 일조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일지 모른다. 성폭력 피해자는 경험자가 아니다 ―법정 싸움에 그치지 않고 얼굴과 이름까지 공개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나 같은 사람도 한 거니까 당신도 할 수 있어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제 이야기를 통해, 신고나 재판을 저렇게 준비하면 되는구나, 도움을 주는 기관들이 있구나, 이렇게 치료받을 수 있구나, 이런 것도 증거가 되는구나…. 그런 정보를 나누는 게 힘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저도 다른 사건들을 통해 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또 숨어 있는 피해자들을 대신해 ‘과거의 죗값 받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더 이상 죄짓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기도 했어요.” ―‘성폭력 피해 고백을 강요한 걸 반성한다’는 내용의 블로그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렵게 용기를 내 제게 피해를 털어놓은 지인이 있어요. 그 사람은 피해가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데 저는 적극적으로 재판에 나서야 한다 강요했어요. 그랬더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더라고요. 피해 사실만으로도 힘들 텐데 내가 또 상처를 주는 거구나. 사람마다 피해자마다 성향이 다른 거니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반응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피해 당시 나이가 어렸으니까 대처가 미숙했다고 비난을 받진 않지만, 성인들은 피해를 겪은 뒤 ‘아무렇지도 않게 카카오톡을 했다’고 욕을 먹어요. 성인이든 어린이든, 성폭력 피해자는 경험자가 아니에요.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아도, 내 옆에서 사람이 쓰러지면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게 사람이잖아요. 성폭력에 대한 대처가 습관이 되도록 훈련받은 것도 아닌 이상, 아무리 교육을 받고 정보를 듣는다고 한들 피해가 닥쳤을 땐 대응이 미흡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분을 문제 삼아, 범죄를 합리화시키는 말들이 힘들어요. 책임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글을 볼 때면 제가 2차·3차 피해를 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남자는 여자랑 말도 섞으면 안 되고 접촉조차 하면 안 되냐, 걸고 넘어지면 다 성희롱·성추행이냐’ 이런 반응도 보기 싫어요. 남녀가 함께 있는다고 성폭력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또다른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김은희 휴대전화엔 ‘예쁜 이름’ 목록이 저장돼 있다. 재판이 끝나면 이름부터 바꿔야지 했다. 오랫동안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 “은희씨 힘내세요” 응원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2월9일 인터뷰를 마친 그는 상대방 주장을 반박해줄지도 모를 자료를 찾기 위해 인근 주민센터로 향했다. 오는 28일에는 또다시 춘천지방법원에 향할 것이다. 그렇게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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