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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25 05:00 수정 : 2018.05.31 14:54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는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5일 특별조사단 3차 회의 개최
3번째 조사결과 발표할지 주목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406개 파일
공개해 국민·판사가 판단하게 해야”
“의혹 확인 땐 후속 조처 뒤따라야”

양승태 원장 때 1차 진상조사위원회
컴퓨터 조사 없이 “블랙리스트 없다”
2차 조사는 행정처·당사자 비협조로
임종헌 컴퓨터·암호 파일 접근 못 해
‘셀프조사’ 한계 딛고 신뢰 회복할까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는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르면 25일 발표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의 조사결과가 ‘셀프조사’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법원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가 판사와 국민 동의를 얻으려면 조사결과의 투명한 공개와 적절한 후속 조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조사단은 지난 21일 “4월16일부터 최근까지 인적조사를 진행했다. 물적 조사와 인적조사를 마무리 짓고 최종 조사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25일 오전 9시30분 대법원에서 3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 조사결과를 보완하기 위해 안철상 행정처장을 단장으로 하고 노태악 서울북부지법원장, 이성복 전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정재헌 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 구태회 사법연수원 교수, 김흥준 행정처 윤리감사관 등 외부 인사 없이 판사들만 참여하는 특별조사단을 구성했다. 지난해 초 양 대법원장의 정책을 비판하는 판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 추가조사위에 이은 세 번째 조사 기구였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과 판사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특별조사단은 앞서 두 차례 조사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원 내부에서는 특별조사단이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 있다고 밝힌 406개 파일의 공개와 영구보존, 책임에 상응하는 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 판사는 “특별조사단이 제대로 조사하고 옳은 결론을 내렸다고 인정받으려면 특별조사단이 선별한 문건이 아니라 406개 파일을 공개해 국민과 판사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조사했으니 결론만 받아들여라’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파일을 숨겼다는 오해가 없도록 충분히 공개하고, 당장 어렵다면 영구보존해 언제라도 정확한 조사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차 진상조사위는 컴퓨터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고 행정처 관계자 말만 믿고 “블랙리스트가 없었다”고 섣불리 결론 내렸고, 2차 추가조사위는 조사 대상·범위 제한으로 전수조사도 못 하고 긴급조치 피해자 손해배상 인정 판결 판사 징계 시도를 담은 문건이나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청와대가 흡족해했다는 문건은 공개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투명한 공개’ 없이는 세 번째 조사결과에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별조사단이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재판권 침해 의혹을 재차 확인할 경우 김 대법원장이 약속한 ‘후속 조처’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두 차례 조사가 진행됐지만 공식적으로 징계를 받은 사람은 지난해 8월 감봉 4개월의 징계를 받은 이규진 전 상임위원 1명뿐이다. 후속 조처가 가능하려면 책임자를 명확히 가려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이 전 위원 외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부터 전 행정처장·차장·실장 등 행정처 고위 간부들의 개입 여부도 진실규명 대상이다. 한 판사는 “책임에 상응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해 법원 내부 징계뿐 아니라 위법한 사실이 드러나면 형사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사실상 법원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특별조사단도 제대로 된 조사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검찰 수사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234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드러난 사실과 의혹만으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증거인멸 혐의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같은 사안에 대해 세 번이나 조사가 진행된 것은 법원 내부의 한계 탓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지난해 2월 행정처 기획제2심의관으로 발령됐던 이탄희 판사가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갑자기 복귀하면서 불거졌다. 이 판사의 이례적인 복귀 이유 때문이다. 이 판사는 행정처 발령 뒤 당시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서 사법개혁 설문조사를 발표하려던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연기·축소 노력과 인권법연구회 회원 수를 줄이기 위한 행정처의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 정당화를 요구받았다. 특히 이규진 상임위원에게 들은 “판사 뒷조사 파일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고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은 양 대법원장의 행정처가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을 ‘관리’했다는 의심으로 이어졌다. 판사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대법원은 지난해 3월9일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진상조사를 결정했다.

이인복 전 대법관이 위원장이 된 진상조사위는 2017년 3월22일 구성돼 같은 해 3월24일~4월18일까지 26일간 제기된 각종 의혹을 조사했다. 그러나 2017년 4월18일 발표된 조사결과는 법원 안팎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진상조사위가 인권법연구회 견제를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으나, ‘판사 뒷조사 파일’이 저장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컴퓨터를 조사하지도 않고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책임자로도 이규진 상임위원만 지목해 ‘윗선’의 책임규명에도 실패했다. 전국 법원에서 추가조사와 사법행정권 남용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자는 판사회의 의결이 연이어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게시됐고, 양 대법원장은 2017년 5월17일 “책임을 통감한다”며 법관회의 개최를 수용했다. 같은 해 6월19일 열린 법관회의에 모인 전국 법원대표 100명은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추가 조사하라”고 결의했다. 그러나 양 대법원장은 “재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판사들의 추가조사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2017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11월4일 추가조사를 결정했고, 같은 달 13일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추가조사위를 구성했다. 추가조사위는 2017년 11월20일~2018년 1월22일까지 조사를 마친 뒤 1월22일 공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후보자 추천’ 등의 문건은 법원 안팎에 큰 충격을 줬다. “BH(청와대)의 최대 관심 현안→선고 전 항소기각을 기대하면서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 “법원행정처→우회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림”, “우병우 민정수석→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 “상고심 처리를 앞두고 있는 기간 동안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을 모색하는 방안 검토 가능” 등이 담긴 ‘원세훈 동향’ 문건은 행정처가 양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설립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과 연결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개입 재판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을 낳았다. 2016년 대법원의 사법행정위원회에 참여할 후보 판사들을 진보·보수 성향 등 자의적인 기준으로 나눠 ‘반드시 포함(1순위)’은 빨간색, ‘유력한 후보군으로 고려(2순위)’는 파란색, 3순위는 검은색으로 표시한 ‘후보자 추천’ 문건은 ‘판사 뒷조사’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추가조사위는 사법행정권 남용을 재차 확인하고 재판권 침해 의혹을 제기했다는 ‘성과’를 남겼지만 ‘제한적인 조사 대상과 범위’는 또 다른 과제를 남겼다. 추가조사위는 ‘판사 뒷조사’ 파일이 저장된 개연성이 큰 이규진 전 상임위원, 행정처 임종헌 전 차장, 김민수 전 기획제1심의관, 임효량 당시 기획제1심의관의 업무용 컴퓨터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김소영 대법관이 처장으로 있던 행정처는 임 전 차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전달을 거부했고, 조사한 컴퓨터도 당사자들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암호가 설정된 파일 760개(삭제 복구한 파일 300개 포함)도 열지 못했다. 인적조사도 7명에 그쳐 공개한 문건의 실행 여부도 확인하지 못했다. 두 차례 조사에도 법원 내부적 문제로 진실규명에 차질을 빚자 강제조사가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거세졌다. 실제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에 양 대법원장, 고영한 전 행정처장, 임 전 차장, 이규진 전 상임위원 등을 고발한 상태였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의 선택은 3차 조사였다. 김 대법원장은 1월24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대법원장으로 마음 깊이 사과한다”면서도 “합당한 후속 조처를 취하기 위해 조사결과를 보완하고 공정한 관점에서 조처 방향을 논의해 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법원 외부 인사가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김 대법원장은 판사들로만 구성된 특별조사단을 2월12일 구성했다. 특별조사단은 4월11일 2차 회의를 연 뒤 암호와 임 전 차장의 컴퓨터를 제출받아 열어볼 수 있는 모든 파일을 전수조사해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된 파일은 406개”라고 발표했다. 당시 “사법부의 확고한 자정노력에 관심, 신뢰,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달라”던 특별조사단이 406건의 파일 조사 결과를 통해 사법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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