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양승태, 직접 플레이어로 뛴 물증·진술 다수 확보
‘서영교 재판개입’으로 더 선명해진 사법농단 구조
‘포토라인 패싱’이 부른 “오만한 사법부” 비판 여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있다. ‘실무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 구속된 상황에서 ‘윗선’까지 책임 소재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 전 차장의 직속상관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공모관계 소명 부족” 등의 이유로 기각(지난달 7일)됐을 때와는 수사 진행 등 영장 심문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검찰 핵심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핵심 혐의 모두에서 단순 지시·보고를 한 수준을 넘어 직접 행동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윗선’에 대해 함구하는 점 등을 근거로 영장전담판사가 지난달 박병대·고영한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한 설명이다.
‘양승태(대법원장)→박병대·고영한(대법관)→임종헌(법원행정처)→재판개입’의 통상 보고체계를 뛰어넘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플레이어’로 나선 증거들은 다수 수집돼 있다. 일제 전범기업 강제노역 민사소송(재상고심)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은 전범기업 쪽 김앤장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를 직접 만났고, 한 변호사가 면담 내용을 김앤장 내부에 보고한 문건이 검찰에 확보되기도 했다. 청와대 요청으로 이 소송을 지연하고 전범기업 승소 쪽으로 결론을 바꾸도록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도 당시 주심인 김용덕 전 대법관을 비롯해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고 한다.
또 자신의 기조에 반대한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주도록 법원행정처에 문건을 작성하게 하고 이를 실행하도록 한 것도 양 전 대법원장이었다는 사실이 당시 행정처 심의관들의 일관된 진술이다. “인사권은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이라고 강조하며 불이익을 줄지 말지를 브이(V) 표시로 일일이 확인해준 그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밖에도 이규진 전 양형실장에게 지시해 헌법재판소 비밀을 빼내 오도록 하고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를 현금화해 자기 명의의 격려금을 준 일 등등은 ‘임종헌과의 공모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는 양 전 대법원장의 독자적인 혐의들이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마저 구속을 피한다면 사법농단이라는 중대한 범죄행위에 대해 실무자들만 무거운 책임을 지는 비상식적인 결론이 도출된다는 점도 법원에 큰 부담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력형 부패범죄에 대한 그간 법원이 제시한 영장 발부 기준도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검찰 한 관계자는 “통상 화이트칼라 범죄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는 혐의의 중대성과 같은 의미로 운용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될 때 법원은 그 사유를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될 때도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이 사건 수사 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으므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법원이 밝힌 사유였다.
최근 드러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재판 청탁을 계기로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개입 구조가 선명해졌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역시 양 전 대법원장에게는 악재다. ‘서영교 재판개입’의 구조는 서 의원이 국회 파견 판사를 자기 방으로 불러 자기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지인 가족의 성범죄에 대한 선처를 구했고, 법원행정처가 이를 해당 법원장 및 판사에게 요청하고, ‘양승태 사법부’는 반대급부로 상고법원 설치 협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자기 아버지 명예(1965년 한일 협정)와 관련된 강제노역 사건 재판의 지연 및 결과 뒤집기를 청탁했고, 이를 양 전 대법원장이 주심 대법관에게 요청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를 시도하고 그 반대급부로 상고법원 설치 협조 및 해외파견 법관 증원을 요구했다는 ‘강제노역 재판개입’과 스케일이 다를 뿐 구조는 같다.
양 전 대법원장이 여느 피의자와는 달리 대법원에서 ‘담벼락 성명’을 발표한 뒤 포토라인은 그냥 지나치는 등 ‘특별대우’를 고집하고 고위 법관들이 이를 감싸는 ‘여론전’을 벌인 일로 “오만한 사법부”라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 점 역시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양진 임재우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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