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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4 09:43 수정 : 2019.02.04 10:10

김명수 대법원장의 취임식, 국회 국정감사,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날 아침 표정. <한겨레> 자료사진

강희철의 법조외전(48)
“대법원장 권한 내려놓겠다” 다짐하고도 사법행정 개혁안 후퇴시켜
신설될 ‘사법행정회의’ 의장 맡으며 ‘법원사무처장’ 직속으로 거느려
법관 인사부터 사법정책·지원까지 양승태 시절 제왕적 권력 그대로
“개악” 각계 비판에도 수정 뜻 없이 완고…국회 사개특위 손에 달려

김명수 대법원장의 취임식, 국회 국정감사,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날 아침 표정. <한겨레> 자료사진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24일 새벽 구속됐다. ‘절대 나오지 않을 구속영장’이라고 장담하던 그 많은 법조인의 예상은 빗나갔다. 얼마만 한 충격이었을까. 한 원로 법조인은 한 시대가 끝났다고 했고, 마침 그날 오전 템플 스테이를 끝내고 나오다 기자의 전화를 받은 전직 대법관은 “세상에나… 어떻게 그런 일이!”라는 외마디를 세 차례나 반복했다.

괜한 호들갑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가 용암 속에 던져지는 순간 무너져 내린 사우론의 제국처럼 양승태의 구속은 일제 잔재에서 출발해 70년간 굳건히 유지돼온 ‘사법왕국’의 극적인 몰락을 대변한다. ‘제왕적’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법원장이 그였기에 충격의 파장이 더욱 컸다.

또한 그의 구속은 전형적인 ‘사법관료 시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역사적 퇴장 선언이다. 법조인 인명사전을 샅샅이 살펴도 양승태만 한 이력을 갖춘 사법관료는 흔치 않다. 판사 임관 성적 최상위권만 갈 수 있다는 서울민사지법에서 시작해 주요 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요직을 섭렵한 뒤 마침내 대법관, 대법원장을 지낸 42년은 대한민국 귀족 법관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특별한 경력엔 간과해서 안 될 배경이 있다. ‘사법부의 하나회’로 알려진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의 회원이었다는 사실과 99% 법관이 선망하지만 1%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는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다.

“우리가 법원에 있을 때 민판연은 가입하고 싶어 한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소년급제, 서울대 법대, 최상위권 성적, 이건 기본이다. 나처럼 서울법대를 나와도 시험이 늦게 되면 자격 미달이다. 가입 절차는 선배들이 ‘싹수’가 보이는 후배를 콕 찍어서 은밀히, 개별적으로 접촉한다. 옛날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하버드대 ‘비밀서클’과 비슷하다고 할까. 열이면 열 감지덕지한다. 법원에서 ‘성골’이 될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니까. 전에 내가 아는 한 후배 판사가 선배의 제안을 거절했다가 그 자리에서 ‘지금 네가 제정신이냐’며 육두문자까지 들었다. 민판연 회원이 법원행정처에 가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행정처 요직에 민판연 선배들이 즐비했으니까. 민판연 회원과 행정처 근무, 이 두 가지면 대한민국 법관 중 1%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그들은 나중에 일선 법원에 와서도 끼리끼리 연락하며 따로 모이곤 했다. 대한민국 판사는 행정처 출신과 비행정처 출신, 두 부류로 나뉜다.” (법관을 지낸 변호사)

민판연은 위풍당당하던 과거의 위상을 잃었다. 법원행정처는 간판 내릴 일만 남았다. 사법관료 전성시대의 총아였던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었으니 이제 이 모든 것을 추억담으로 돌려도 좋을까. 다시는 그와 같은 ‘사법부의 제왕’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고개를 가로젓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요즘 들어 더욱 오리무중인 김명수 대법원장의 ‘속내’ 탓이다. 김 대법원장을 향한 의구심은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사법행정 개혁안(이른바 ‘최종 의견’)에서 본격화했다. 고위 법관을 지낸 인사의 평이다.

“대법원이 국회에 낸 안대로 가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가지고 있던 권한에서 변하는 게 없다. 애초 사법발전위원회가 낸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할 것처럼 하더니 내용을 많이 바꿨다. 후퇴했다. 이렇게 하면 개혁은 유명무실해진다. (김 대법원장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없어서 불안하거나 권한 상실감이 커서가 아닐까.”

‘사법농단’ 사건은 대법원장의 권한 남용에서 비롯됐다.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났다. 시스템은 절대권력자 앞에서 작동을 멈췄다. 그러니 고쳐야 할 대목이 분명하다.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일이다. 김 대법원장이 스스로 위촉·구성한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와 그 산하 ‘추진단’은 그런 문제의식에 걸맞은 개혁안을 지난해 11월2일에 냈다.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법원 안팎에서 나왔다.

한데, 이 안을 열흘 동안 말없이 들고 있던 김 대법원장이 같은 달 12일 갑자기 “법원 가족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발표한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이후 내부 토론회와 판사·법원 공무원에 대한 설문조사가 잇따라 진행됐다. 전국법원장회의는 “사법행정회의 신설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위협까지 보탰다. 그러고는 12월12일 추진단 안에서 한참 퇴보한 대법원 ‘최종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사법행정권 일부를 신설될 ‘사법행정회의’에 넘기는 데는 동의했다. 하지만 모양만 그럴 뿐 실질을 뜯어 보면 대법원장은 여전히 ‘제왕’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회의의 의장을 겸한다. 그것도 막강한 의장이다. 비상설기구인 사법행정회의에서 상근자는 대법원장과, 그가 대법관 회의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법원사무처장(신설) 두 사람뿐이다. 법원사무처장은 사법행정회의의 당연직 위원이면서 사법행정사무 집행기구인 법원사무처의 책임자다. 최종 의견엔 “법원사무처는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법원의 인사·예산·회계·시설·송무…등에 관한 사무를 담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러면 사법농단 사건의 화근이 됐던 기존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 같은 수직적 지휘-복종 관계가 새 시스템에서도 똑같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사법행정회의는 집행기구 책임자인 법원사무처장 인선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게 설계돼 있다. “집행권은 대법원장이 쥐고, 행정회의는 형식적인 추인 기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사법행정회의의 구성도 문제다. 추진단 안은 법원 내부 5(대법원장 제외), 외부 5로 균형을 맞췄다. 반면 대법원 최종 의견은 법원 내부 6명(대법원장 포함하면 7명) 대 외부 위원 4명으로 비율을 바꿨다. 6 대 4 혹은 7 대 4의 의견 지형이 일상화하면 견제 기능이 정상 작동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다. 대법원장은 외부 위원을 추천할 ‘사법행정회의 위원 추천위원회’에도 관여해, 7명 추천위 중 1명을 지명한다.(추진단 안에는 대법원장의 지명권이 없다) 대법원장의 ‘의중’이 실린 이 1명이 7분의 1 이상의 힘을 갖게 될 것은 자명하다. 추천위원도 법조인 일색이다. 애초 추진단 안은 추천위원에 “그밖에 사회적 신망이 있는 사람 3명(1명 이상 여성)”을 넣도록 했으나, 대법원은 최종 의견에서 이를 빼버렸다.

또 사법행정회의의 외부 위원 4명은 “판사의 보직에 관한 인사안 확정에는 참여하지 아니한다”고 못 박아 배제했다. 법관 인사안은 대법원장 포함 법원 내부 위원 7명의 의사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장 권한의 8할 이상”이라고 할만큼 중요한 법관 인사에 누구의 생각이 관철될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회의 아래 법원사무처를 두는 추진단안을 폐기하고, 대법원장이 직접 법원사무처를 지휘하도록 변경했다. 그래서 대법원장은 여전히 판사의 임명, 연임, 퇴직, 승진, 보직, 전보, 배치, 평정은 물론 사법정책, 사법지원 등 사법행정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휘하고 감독한다. 다만 절차가 조금 번거로워졌을 뿐이다. 기존엔 그저 결정하고 법원행정처에 지시하면 끝났지만, 앞으론 사법행정회의의 형식적 심의·의결을 거치야 한다. 이게 ‘김명수표’ 개혁의 실체인 셈이다.

김 대법원장은 역대 어느 대법원장보다도 자주, 많이 사법개혁을 다짐했다.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고, 그걸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고, 대법원장 권한을 아예 ‘내려놓겠다’는 말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문재인 청와대도 그를 대법원장에 지명하면서 “김 후보자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해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고 큰 기대를 나타냈다.

● “앞으로 저는 국민으로부터 진심으로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통합과 개혁의 소명을 완수하는 데 모든 열정을 바칠 것을 여러분 앞에서 엄숙히 다짐합니다. (…)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는 한 사람의 고뇌에 찬 결단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에 의하여야 합니다. (2017년 9월26일 취임사)

● “우리 사법부가 지난 시절의 과오와 완전히 절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 그간 우리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다시는 이러한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는 것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 사법행정 분야에서도 ‘대법원장의 권한 내려놓기’를 통해 법원 내·외부의 다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9월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사)

누구는 김 대법원장이 변했다 하고, 누구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잘못 봤다고 하고, 누구는 소심한 나머지 결단을 못 한다고 한다. 그의 레토릭과 ‘최종 의견’의 간극이 너무 크다 보니, 법조계에선 다소 무리한(?) 해석까지 나온다. 전형적인 권력자의 관점에서 김 대법원장의 처지와 생각을 더듬어보는 것이다.

“새로 권력을 쥔 김 대법원장 입장에서 과거 권력자인 양 전 대법원장은 부정과 청산의 대상이다. 그의 지시에 따랐던 과거 행정처 판사들이라고 해봐야 극소수에 불과하다. 검찰 수사 덕분에 크게 공들이지 않고도 사법부의 권력지형을 바꿨다. 앞으로 몇 차례 인사를 더 하면 내부 일각의 반발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다. 하지만, 사법행정 개혁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 개혁의 강도와 김 대법원장의 권한은 반비례한다. 대법원장 6년 임기 중 이제 겨우 1년 4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그 막강하고 편리한 권한을 분산하겠다니…. 권력자 스스로 자기 권력을 덜거나 내려놓는 개혁? 그런 걸 본 적이 있는가.” (검찰 출신 변호사)

물론 다른 해석도 있다. 불안한 ‘입지’가 김 대법원장을 햄릿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춘천지방법원장에서 대법원장으로 직행했다. 춘천지방법원장이면 법원장 서열에서 거의 끄트머리쯤 된다. 대법관도 해보지 않았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도 전무하다. 아마 문재인 정부는 그걸 장점으로 본 것 같다. 김 대법원장은 지명된 직후 ‘난 31년 재판만 한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내 귀엔 ‘난 비주류고 사법행정에 문외한이요’라는 고백으로 들렸다. 경락을 알아야 침을 놓듯 개혁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때 이용훈 대법원장과 비교해 보라. 그 양반은 그 전에 대법관을 지냈다. 대법원장으로 갈 때는 법관 출신 변호사를 ‘책사 겸 비서실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래서 한 게 그 정도다. 반면에 김 대법원장은 단기필마로 ‘적진’ 한복판에 들어갔다. 주변에 ‘자기 사람’이 없었다. 취임 초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법원행정처장을 그대로 두길래 ‘왜 저러지?’ 했다. 두 번째 행정처장도 자기 사람이 아니었다. 법원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그는 여전히 외롭다.” (법관 출신 변호사)

이유가 무엇이든, 대법원 ‘최종 의견’의 문제는 반개혁적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12월12일 국회 사법개혁특위에 제출하자마자 “개혁 후퇴”, “개악”, “(기존과 똑같은) 도돌이표” 등의 비판이 각계에서 쏟아졌다. “이대로면 제2 양승태를 막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뒤로 6주가 흘렀다. 하지만 수정은 없었다. 대법원 관계자도, 국회 사법개혁특위 관계자도 “최종 의견의 수정 여부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개혁안은 글자 그대로 김 대법원장의 ‘최종 의견’인 셈이다.

이젠 ‘칼자루’를 쥔 국회에 달렸다. 대법원도 ‘국회가 정해주면 따르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고 나면 새로운 정쟁에 극한 대치를 밥 먹듯 하는 국회가, 파견 법관을 재판 청탁의 통로쯤으로 여기던 그 국회가 과연 개혁다운 개혁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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