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5 11:30
수정 : 2019.04.0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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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덮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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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가구 가운데 50~70가구 화재로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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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덮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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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9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회관. 태풍과 같은 강풍이 몰고 온 산불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주민 스무명 가량이 모여서 구호 물품을 나누고 있었다. 이번 화재의 최초 발화지인 원암리 현대오일뱅크 맞은편 전신주에 달린 개폐기에서 2.2㎞가량 떨어진 이 마을은 발화지에서 강풍을 타고 넘어온 화마에 120가구 가운데 50~70가구 정도가 소실됐다. 화마로 무너진 잿더미 같은 집 근처에는 얼굴에 그을음을 묻힌 개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당의 장독은 열기에 모두 터져서 깨어져 있었고, 농기계도 앙상한 재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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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덮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의 장독들이 깨어져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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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집 앞에서 만난 원암리 부녀회장 한순희(59)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한씨는 “전부 타 버렸다. 집이 날아갔다, 몽땅”이라고 말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씨는 “남편이 산불 감시원인데, 저녁 7시께 둘이서 저녁 먹고 티브이를 보다가 마을회장이 전화로 ‘불난 거 아느냐’고 알려와서 밖으로 나와봤다. 그런데 2~3분 뒤 집 뒤쪽 하늘 위에서 불씨가 날아와서 뚝 떨어지더니 집에 불이 확 붙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어 “양양에 있는 사돈댁에 가서 자고 오전 6시 반에 다시 와보니까 집이 이렇게 모두 타버렸다. 처음 봤을 때는 눈물도 나고 그랬는데, 이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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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덮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 주민 이상준씨가 “불을 헤집고 나가서 얼굴이 그을렸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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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암리에 사는 또 다른 주민 이상준(65)씨는 전날 밤 화마가 덮치던 상황을 악몽처럼 기억했다. 이씨는 전날 덮친 화마로 건평 168㎡ 집이 모두 소실됐다. 이씨는 “저녁 7시 넘어서 불길이 오는 걸 보고 양말 한짝도 챙기지 못하고 집에서 나와서 차를 몰고 마을에서 탈출했다. 강풍을 타고 불꽃이 눈이 내리듯이 번져오더니 차에도 불꽃이 눈송이처럼 내려왔다. 모든 것이 30분 안에 벌어진 일”이라며 “밤새 뭔가 불길이 덮여올 것 같아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에 집에 와봤더니 집은 모두 날아갔다. 우황청심환 먹고 진정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사람이 살겠느냐. 당장 갈 데도 없다. 국가가 배려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마을 주민 정점순(69)씨도 “변압기 쪽에서 불이 난 뒤 우리 아저씨와 10살과 11살 손녀 둘이랑 집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집을 둘러싸고 불이 붙어 있어서 차로 불을 뚫고 나갔다”며 “돌아와서 보니 집이 이렇게 다 탔다. 기도 안 찬다. 내 평생 처음 겪는 일인데, 이걸 언제 모두 수리하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씨 남편 김동아(72)씨도 “농산물 건조기도 다 탔고, 집이 모두 주저앉아서 새로 지어야 한다”며 “당장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군청에서는 아직 연락 온 게 없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속초/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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