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 희생자 가족 김현구(36·오른쪽)씨와 생존자 윤아무개(32)씨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5일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참사 100일
생존자 윤씨는 3개월째 휴직 중 일상복귀 못 해
가족들 현지 수사상황 묻자 외교부 “개인사건”
‘헝가리 가서 시위해야 하나’ 피해자들 답답함 호소
헝가리 현지에서는 ‘실종자 발견’ 사례금 내걸어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 희생자 가족 김현구(36·오른쪽)씨와 생존자 윤아무개(32)씨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피해자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정부 “한국에 돌아온 순간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헝가리 수사 결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요. ‘헝가리 머르기트 다리에 올라가서 시위해야 하나?’ 이런 생각마저 합니다.” 바이킹 시긴호의 유리 선장이 왜 그때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들이받았는지, 그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그 처벌이 정당한 것인지 등….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는 것보다 이런 것들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윤씨는 헝가리에서도 관련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의 사건이라 헝가리 법상 당사자가 아닌 대사관은 알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윤씨가 헝가리 경찰서에 직접 가 8000쪽의 수사기록을 보고서야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윤씨는 “헝가리 현지 수사와 관련해서 외교부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 하고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고로 부모님과 누나, 6살 조카를 잃은 김씨 역시 “한국에 돌아온 순간 정부가 우리의 손을 탁 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향후 대응책 마련을 위해 외부에 가족들이 모일 장소 섭외를 부탁했지만 ‘(피해자의) 개인적인 일이라서 해줄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김씨는 “국민 20명 이상이 숨진 재난이다. 왜 한국 정부는 발을 빼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현지에서 애써준 구조대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현지에서 구조대 분들, 정부 소속 직원들과 단체들, 교민들과 종교단체들… 알게 모르게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왔네요. 구조하는 분들 생명이 소중하지요. 그래서 가족들이 대사관 통해서 ‘몸 상하지 않게 몸 챙겨가면서 해주시라. 너무 그렇게까지 하는 걸 우린 원치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_________
사건 초기 가족들이 언론을 피한 이유 윤씨는 사고 당시 자신의 몸을 ‘피멍투성이의 새까만 몸’이었다고 기억했다. 사고가 났을 때 배 안에서 여기저기 부딪힐 때 생긴 상처들이었다. 하지만 피멍보다 윤씨를 아프게 한 건 언론이었다. 언론은 다짜고짜 “왜 여행을 갔냐”고 캐물었다. 사고가 난 뒤 48시간 만에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카톡으로 기자들이 ‘보이스톡’을 해댔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사고 이후 최대한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피해자들은 다짜고짜 “이 사실이 맞냐, 아니냐”고 묻는 기자들이 무섭기까지 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내가 죄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에서 얼마 받았느냐”며 참사를 ‘가십거리’ 정도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말도 비수가 됐다. 김씨는 “‘세월호는 얼마를 받았다던데 너희는 얼마 받았냐’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윤씨는 “‘지네들이 돈 주고 놀러 가서 사고당해놓고 왜 우리 세금을 왜 쓰냐?’는 댓글을 봤다”며 “수색 등 구조에 세금이 들어간 건 맞지만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일절 없다”고 강조했다. 생존자와 가족들은 여전히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 “주검을 먼저 찾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제발 하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우리 이모 주검이 발견되니까 알겠더라고요. 정말 너무 미안해서 남은 가족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윤씨의 말이다. 사고 이후 실종자 1명의 주검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정부합동 신속대응팀의 수색활동은 지난 7월30일 종료됐다. 생존자와 가족들은 최근 정부에 ‘실종자를 찾는 사람에게 사례금을 주면 안 되겠냐’고 제안해 5일 현재 주헝가리한국대사관 페이스북과 누리집에는 ‘허블레아니호 실종자를 찾는다. 발견하신 분께 1백만 포린트(한화 약 400만원)를 사례한다’는 글이 게시된 상태다. 생존자와 가족에게 참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피해자들은 사고의 진상이 밝혀지고 가해자가 정당한 처벌을 받은 뒤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안전하게 돌아가야 참사는 끝이 날 것이라고 말한다. “헝가리 사고가 아직 끝이 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개인의 사고가 아니라 국민 33명이 다치거나 죽은 ‘참사’이자 ‘재난’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윤씨가 힘주어 호소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