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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4 15:14 수정 : 2019.06.14 18:37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6월1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희호 여사 빈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21]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이희호 여사에게 부치는 편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6월1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희호 여사 빈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디제이(DJ·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통하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에게 ‘세브란스’(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는 야속한 곳이다. 10년 전 이곳에서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고, 8개월 전에는 아내가 눈을 감았다. 두 달 전(4월20일)에는 김 전 대통령의 큰아들이자 ‘정치적 동지’이던 김홍일 의원이 이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6월11일, 그는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을 맞아야 했다. “저는 이곳 병실도 가기 싫고 영안실도 들어가기 참 싫어요.” 그동안 언론에 ‘김대중 정신’을 줄기차게 이야기해온 그는, 이날 빈소와 방송사를 오가며 ‘이희호 정신’을 부지런히 전했다. 방송사로 향하는 박 의원의 차에 동승했다. 그가 몇십 년을 지켜본 이희호 여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못다 한 말을 전하는 형식으로 이 여사의 삶을 그려봤다.

이희호 여사님, 서너 달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슬픈 감정은 없습니다. 허전해요. 개인적으로 여사님은 저를 정계로 입문시켜준 은인이잖아요. 1992년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했을 때 당내 인사가 제 선친이 인민군 대장이라고 투서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한국전쟁 전에 돌아가셨고 독립유공자(밀양 박씨 진도 종친회 기록)이기도 한데… 레드콤플렉스(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 피해자이다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저를 마주하길 꺼렸어요. 그런데 여사님이 제가 가지고 간 아버지 관련 자료를 보신 뒤, 다음날 김 전 대통령이 저를 불러서 “오해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 쭉 옆에서 보며 김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로부터 나오는구나, 그런 감탄을 많이 했어요. 여사님은 김 전 대통령과 어디든 동반하셨는데 대통령이 서너 시간 말씀하셔도 한마디 나서지 않았어요. “선구적 여성운동가이셨던 분이 왜 그러십니까” 하고 제가 물어보니 여사님은 “내가 나서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일정이 끝난 뒤, 두 분이 많은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여사님이 김 전 대통령의 단점을 굉장히 많이 지적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정치인은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인데 여사님은 몇 번씩 “자기 자랑 하면 안 된다”고 김 전 대통령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김대중의 충고자였습니다.

1997년 12월18일이 기억납니다. 12월17일 선거가 끝난 뒤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맞는 첫날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과 여사님, 저, 셋이서 식사하는데 제가 “오늘은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제가 대통령과 영부인 앞에서 함께 식사하니까요”라고 하니 대통령과 여사님이 파안대소하셨잖아요.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비서를 시켜 청와대 조직도를 그려놓은 노트를 가져왔잖아요.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여사님이 “절대 우리는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사님은 그 뒤에도 ‘용서’를 항상 이야기하셨습니다. 대북 송금 특별검사(2003년) 때도 “성경에 용서가 가장 큰 복수라는 말이 있다. 다 용서하고 사는 게 제일 좋다”고 하셨어요.

허전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나신 뒤 빈자리도 사모님 존재감 때문에 커 보이지 않았는데… 여사님이 남기신 가치는 ‘박애 정신’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소수자, 약자,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가 이희호 정신입니다. 그 정신을 잇겠습니다. 그리고 ‘용서’입니다. 대통령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고 자주 말씀하신 것도 여사님에게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요?

여사님, 편히 가십시오. 하늘나라에서 김 전 대통령도, 큰아들 김홍일 의원도 만나셔서 많은 말씀을 나누세요.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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