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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30 19:10 수정 : 2019.10.31 08:07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맨 왼쪽)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엔 인권이사회에 피해자 인권 회복 위한 진정 제기
“일본 국제사회 압박 첫 계기”
서울·광주 30건 추가소송 진행…피해자 80여명

대법 판결 1년… 압류자산 강제집행 제자리
일본제철 자산 매각명령 심문서 재송달
일본 외무성 서류 받고도 묵묵부답
기업 송달 여부 확인 안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맨 왼쪽)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이 나온지 1년이 된 30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인권 회복 및 일본 정부의 배상과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 유엔 등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일제강제동원 배상판결 1년, 피해자의 인권 피해 회복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진정서를 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흔살 고령의 양금덕 할머니(미쓰비시 사건 원고)는 “(일제강점기) 5개 도시에서 138명이 동원됐다. 숫자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국 사람을 동물취급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아베는 하루속히 사죄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95살 고령의 이춘식 할아버지(일본제철 사건 원고)도 “모든 것에 고맙다. 전 국민이 날 도와줘서 고맙다. 할말이 많지만 목이 막혀 말을 다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인천 도림초등학교 학생이 “할아버지가 뉴스에서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했지만 할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강제징용을 한 일본이 잘못이에요. 나라와 나라끼리 사과를 한 것이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지요. 그러니 울지 마시고 고맙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건강하시고 기운 좀 내세요. 알겠죠?”라고 쓴 편지 내용을 들으며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이 할아버지와 양 할머니가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진정서에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역사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 피해자와 대화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관련 절차를 진행한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김기남 위원장은 “지금까지 강제동원 관련 사안에 관해 국제사회가 발언하거나 개입해 본 적이 없었다”며 “일본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첫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진정이 제기되면 유엔 특별보고관들이 일본 정부에 서한을 보내거나 직접 방문해 인권 피해 현황을 조사하고 문제 해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열린다.

민변은 대법원 판결 뒤 서울과 광주에서 각각 피해자 28명(21건), 54명(9건)이 추가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존에 소송을 냈던 일본제철이나 후지코시 뿐 아니라 후루카와기계금속, 스미세키홀딩스 등 모두 11개 기업이 그 대상이다. 이들 중에는 국내 자산이 없는 기업도 포함됐으나 피해자들은 소송을 이어가기로 했다. 강제동원사건 공동대리인단 최용근 변호사는 “(국내 자산이) 없는 기업은 승소 판결을 받아도 배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내했다. 그럼에도 판결을 받아 (일본의) 불법 행위가 존재했음을 확인받고, 사과를 받고 싶다고 하신 분들이 있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노총도 일본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묻는 100만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물론 뜻이 맞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다음해 6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 엄미경 부위원장은 “한국은 국제노동기구의 강제노동금지 협약에 비준하지 않고 있어 일본을 ‘강제노동 금지 위반’으로 제소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한국 정부가 이 협약에 비준할 것을 요구하며 서명운동에 돌입할 것”이라 밝혔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실제 배상까지 절차는 더디기만 하다. 이춘식 할아버지가 원고로 있는 일본제철 사건에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일본제철의 피엔알(PNR) 주식 19만4794주(7억6500만원 상당)를 압류했다. 지난 7월에는 이 압류에 근거한 매각명령을 진행하기 위해 심문서를 송달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답을 받지 못했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심문서는 일본 외무성에 이미 도착했지만 일본내 송달 현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3-4개월이 지나 심문서가 반송된다면 (매각) 방어권을 포기한 걸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 김세은 변호사는 “일본이 또다시 서류를 반송한다면 공시송달로 진행해 매각 절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보낸 압류명령 결정문을 일본제철에 송달하지 않고 그대로 반송한 바 있다. 헤이그 협약에 따라 송달이 이뤄지지 않으면 일본 정부는 증명서에 그 이유를 명시해야 하지만 이를 생략한 채 결정문을 돌려보낸 것이다. 현재는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의 요청을 수용해 이 결정문도 일본에 재송달한 상태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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