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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4 17:59 수정 : 2019.11.05 02:42

박진 ㅣ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지난달 어느 밤, 도로를 줄지어 가던 어미 돼지 2마리와 새끼 돼지 8마리가 승용차에 치여 숨진 사고가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극히 슬펐다. 이어진 아나운서의 진행 발언 때문이었을까. “사고 차량도 크게 부서졌는데,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치 ‘돼지들은 죽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처럼 들렸다. 혹시라도 알아듣는 귀가 있다면 얼마나 매정하게 들렸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생명의 무게는 몇그램이었을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된 지난 몇달 동안 공포도 커졌다. 경기 파주·연천·김포, 인천 강화로 확진이 이어졌다. 이 지역 돼지들은 살처분되거나 수매되고 도태됐다. 언론 보도를 보니 인천 강화군에는 애완용 돼지 한마리를 마지막으로 모든 돼지가 ‘멸종’됐다. 마지막 돼지의 주인은 “돼지열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왜 사랑하는 애완용 돼지까지 죽여야 하는가”라며 거부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의 돼지에게 강제 살처분 결정을 내렸다. 돼지들은 방역상 멀리 가지도 못하고 살던 땅 밑에 묻힌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한군데로 몰아 덮개로 씌우고, 이산화탄소 가스를 주입해 안락사시킨 뒤 매장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잠들지 못하는 생명이 있기 마련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가스 농도와 양이 맞지 않아 깨어나거나 살아 있는 상태에서 매립되는 돼지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포클레인 삽날에 흙더미와 함께 파묻히는 돼지들의 비명이 수십만에 이르고 있다.

멧돼지들은 사냥 대상이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번져나가자 정부는 야생 멧돼지 포획 방침을 발표했다. 포수들은 사냥개를 데리고 총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돼지들이 쫓기는 장면은 기사로 전송됐다. 제목은 ‘돼지열병 전파하는 멧돼지 사냥을 가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라고 달렸다. 멧돼지들은 사냥개와 사냥꾼을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되었고 기사는 익스트림 스포츠처럼 쓰였다. 교통사고로 즉사한 돼지들 보도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좋은 일 하셨네. 수리비라도 지원해줘라. 10마리다.’ 근수로 재지 않아도 되는, 산업조차 되지 못한 죽음에는 애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돼지들만 아프지 않다. 살처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어떤가.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축 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한 공무원과 공중방역 수의사들은 ‘학살’을 했다는 자책감과 ‘위에서 시키니 한 일’이라는 자기합리화 사이를 오가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이들 4명 중 3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였고, 4명 중 1명은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제역 사태 당시 살처분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 9명이 과로 또는 자살로 숨진 것도 보고됐다.

‘살처분 외주화에 동원되는 일용직 노동자 상당수가 이주노동자들이며, 이들은 사전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된다’는 동물보호단체들의 기자회견도 있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축제 등 경기도 가을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에버랜드와 이케아, 스타필드 같은 곳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 가을 벌어 겨울을 나는 예술가들에게 혹독한 겨울이 닥쳤지만 폐장하지 않고 성업 중인 대자본들은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매장에서 계절을 날 것이다.

영화 <옥자>에서 산골 소녀 미자는 슈퍼돼지 ‘옥자’를 글로벌 기업 ‘미란도’로부터 지켜낸다. 미자에게 ‘옥자’는 고기가 아니라 친구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든 돼지를 옥자로 삼을 수는 없겠지. 그러나 적어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가져야지. 삼겹살로 태어나고, 갈비로 살아가고, 가공육으로 죽어가는 옥자들에게 돼지열병 또는 구제역은 다른 이름으로 찾아올 테니까.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책을 불사르는 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다. 결국 인간을 불태우게 된다”고 말했다. 분서 이후 사람이 학살되는 야만을 경고한 것이다. 시인의 말로 되묻는다. 돼지를 사냥하고 살처분하는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통은 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인간을 포함해서.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란도’를 닮았는가, 동물의 얼굴을 한 ‘옥자’와 더 닮았는가. 알지 못하겠으나 우선은 살고 봐야겠다. 옥자야, 도망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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