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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6 09:01 수정 : 2020.01.16 09:08

[CES 참관기]

현대차·도요타·메르세데스-벤츠
AI기반 미래 모빌리티 청사진에
개인용 비행체 등 전면 내세우기도

21세기 산업 패러다임 변화 직면
제조영역 뛰어넘어 새로운 길 모색
“체질 개선 먼저해야 주도권 잡는다”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카지노 도시다. 수많은 사람이 잭팟을 꿈꾸며 불나방처럼 몰려든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이 화려한 도시는 혁신 기술을 길어내는 오아시스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 7~10일(현지시각) 이곳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아이티(IT)전시회 ‘2020 시이에스(CES)’를 취재했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자동차의 약진’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도요타, 현대자동차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저마다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기반으로 한 기계와 인간의 교감, 자연과의 연결성을 놓고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청사진을 보여주려 했다. 전시장 북쪽 노스홀에 마련된 자동차관의 하이라이트는 현대차 부스의 ‘개인용 비행체’(PAV)가 아닐까 싶다. 현대차는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발표하며 선도업체로 치고 나왔다. 600㎡ 규모의 전시관에는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함께 개발한 실물 크기의 비행체 콘셉트가 시선을 끌었다.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가 아닌 비행체를 전면에 내세운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수소차는 물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도 아직 제대로 열리지 않았는데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니….’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현장 반응은 뜨거웠다. 시이에스 개막 첫날에만 현대차 부스에 4만명을 웃도는 관람객이 몰렸다. 2009년 첫 참가 이래 최대 반응이다. 주요 외신들은 시이에스 소식을 전하며 현대차 전시관을 먼저 소개했다.

일본의 도요타는 스마트 시티 개념인 ‘우븐 시티’ 건설 계획을 내놨다. 후지산 인근에 내년 초 착공될 이 소도시는 자율주행차와 로봇, 퍼스널 모빌리티, 스마트 홈, 인공지능 기반의 ‘실험도시’이다. 데이터와 센서를 통해 사람, 건물, 자동차가 모두 연결된다는 개념이다. 벤츠의 올라 칼레니우스 회장은 기조연설에서 ‘지속가능한 럭셔리’ 개념의 친환경 콘셉트카를 내놓고 인간과 기계, 자연과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전통적인 차량 전시 대신 개인용 비행체를 선보인 현대자동차 부스

수년째 시이에스에서 자동차 회사들이 보여준 것은 자율주행 기술이었다. 완전하지 않은 제한된 기술이었지만, 업체마다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주행하며 시연을 펼쳤다. 인공지능과 커넥티비티에 기반해 ‘자율주행 이후’ 차량 안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도 보여줬다. 하지만 기술 진전의 한계에 직면했던 탓일까. 자율주행 시대는 공언한 대로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고 자동차 회사들 스스로 관련 기술을 보여주는 것을 진부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번 시이에스에서 현대차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 도요타가 ‘스마트 도시’를 들고나온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시이에스가 점차 자동차를 빨아들이자 매년 초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올해 행사 시기를 6월로 늦춰버렸다. 세계 최대 모터쇼라는 위상도 기술 환경 변화에 흔들리는 셈이다. 일부에선 시이에스가 소비자 가전쇼에서 모터쇼로 넘어간다고 하지만, 혁신 기술보다 비전 과시에 지나지 않는 ‘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시이에스에서 그런 게 목적이라면 현대차는 비행체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일단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현대차가 그리고 있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사업의 생태계를 갖추려면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어가야 할지, 실용화와 상용화는 언제쯤 될지 면밀히 짚어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가져다줄 현대차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현재로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인용 비행체를 발표한 당일 국내 증시에서 현대차 주가는 3%나 급락했다. 관람객들과 세계 언론은 현대차 부스에서 환호했지만 투자자들은 수요가 줄면서 매출이 감소하는데 새로운 투자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사업 계획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헬리콥터 제조업체 벨 전시관

세계적으로 차 산업은 과거와 전혀 다른 위기에 직면해있다. 20세기 내연기관으로 대표되는 차 산업이 21세기에 들어와 큰 전환기를 맞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원인이 공급 과잉일 수도 있고 전동화·자동화로 상징되는 패러다임의 구조적 변화일 수도 있다. 시장 위축과 함께 글로벌 제조사들의 체질 개선은 자동차 생산 시장에 감원이라는 칼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내 3개의 공장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7개의 공장 문을 닫으며 1만4천여명 감원에 나선 제너럴모터스(GM)와 1만2천여명의 인력을 줄인 포드, 미국 내 픽업트럭과 벤 생산을 줄이겠다며 1만2500명을 감축한 닛산 등 지난해 자동차 업계는 지각 변동을 겪었다.

이번 시이에스에서 좀 더 명료해진 것이 있다면 차 업체들이 스스로를 재정의하려는 고민이 깊어졌다는 점이다. 현대차가 미래 비전으로 제시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은 대부분 업체들도 이와 비슷하거나 약간 변형된 비전을 갖고 있었다. 전통적인 차 업체들은 제조 영역을 뛰어넘어 새로운 길을 모색했고 저마다 미래 모빌리티 구상을 제시했지만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인공지능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업종 간 경계선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도로 너머로 시야를 넓혀가고 있는 차 회사들의 기술개발 노력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를 지향하는 전통 업체들에게는 수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 내려야 할 재정의는 공정 과정이나 노사 문제에서 또 다른 변화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시이에스에서 만난 정구민 국민대 교수(전자공학부)는 “5세대(5G)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기업과 산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영역은 무한확장하고 있다”며 “누가 먼저 체질을 개선하느냐에 따라 미래 산업 주도권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사진 홍대선 선임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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