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7 20:01
수정 : 2006.06.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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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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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자유무역협정(FTA)의 성격은 형식상 같은 자유무역협정이라 하더라도 어떤 국가가 추진하는 협정인가에 따라 성격이 아주 상이하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 일본, 중국이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이다.
우선, 한국이든 오스트레일리아든 미국과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은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즉 미국은 협상 상대국에게 농산물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서비스, 의료, 문화, 정보통신 인프라, 투자 자유화, 노동·환경 조항까지도 포함한 포괄적인 시장접근을 요구하는 데 비해, 미국은 민감한 산업부문과 생산라인에 관련된 원산지 규정에 의거하여 얼마든지 선별적이고 차별화한 시장접근 일정을 제시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협정 모델은 협상 상대국에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수반한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에서도 미국의 포괄적인 시장개방 요구로 의약급여제도, 검역, 지적재산권 보호, 국외직접투자의 관리 등 오스트레일리아의 핵심적 제도가 다 허물어졌다.
끝으로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협정은 일본, 중국이 추진하는 협정과 달리 과학기술 발전이나 인적자원 개발 등 상대적으로 발전수준이 낮은 협상 상대국의 경제발전 지원이나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미국이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 모델을 비대칭적인 신자유주의 협정 모델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본이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은 협상 상대국의 경제발전, 과학기술발전, 인적자원 개발 및 교류 등 발전지향적 협력 관계를 많이 고려하고 있다. 즉 일본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때 경제협력 협정에 기초하여 무역 자유화와 함께 경제·기술 협력을 동시에 강조한다. 발전주의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싱가포르 모두 일본이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의 이런 성격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의 차별적 성격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제안할 때, 협상 상대국 및 지역에 대해 긴밀한 경제협력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중국은 홍콩, 마카오 등과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철폐 등을 포함하는 경제동반자협정(Closer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체결했다.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들과 2010년까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함과 동시에, 더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자유무역협정을 최종 목표로 잡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중국은 단순한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 이외에 광범위한 지역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계에서 가장 혹독하다고 평가받는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모델, 즉 비대칭적인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협정 모델과 맞서 유리한 협상 결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다. 협상 팀을 강화하기 위해 협상 인력을 대폭 충원했다고 하지만 보강된 인력이 협상 경험이 없거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협상 능력을 강화하기에는 애시당초 역부족이다. 딜레마는 현재와 같은 준비부족 상태에서 협상력을 극대화하여 미국의 파상적인 공세를 이겨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경우 스위스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공허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동아시아 차원의 지역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모델에 임하는 것이 순리이자 정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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