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4 19:17
수정 : 2006.07.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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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서울 신라호텔 건너편에서 협정 체결 반대를 요구하는 경과보고대회를 열고 있다. 새끼줄은 전날 촛불집회에서 소원을 적은 종이를 끼운 것이다. 이번 2차 협상은 의약품 분야를 둘러싼 이견으로 네 분과 회의가 모두 취소되는 등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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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결조건 약속 위반” 복지부 “이미 결정된 일”
다른 분야협상도 공세적 전환…9월 3차협상 ‘고비’
[한-미 FTA 2차 협상] 파행 배경·전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2차 본협상이 반쪽짜리로 마무리된 발단은 의약품 분야의 협상 파행이다. 협상 개시 이튿날인 지난 11일 열린 의약품 분야 협상은 미국 협상단의 일방적인 퇴장으로 사실상 일찌감치 결렬됐다. 우리 쪽에서 설명한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미국 협상단은 “이런 중요한 문제를 자유무역협정 틀 안에서 논의하지 않으면 전체 협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그 다음날부터 상품이나 서비스 등 다른 분과 협상도 차질을 빚게 됐다.
협상단은 2차 협상 이전부터 의약품 분야가 ‘딜 브레이커’(협상을 깨는 요소)가 될 가능성을 높게 쳤다. 미국 요구안에 대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방침이 워낙 확고했기 때문이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협상 전 실무자들에게 “여기서 더 물러선다면 옷 벗을 각오 하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미국 협상단은 복지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약값 적정화 방안을 약속 위반으로 보는 듯하다. 우리 정부가 약속한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의 하나인데, 일방적으로 약값 산정방식 개선작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외교라인에서 미국의 의약품 관련 요구를 ‘신중하게 고려하겠다’는 수준의 약속을 했을 뿐”이라며 “약값 적정화 방안은 이미 2002년부터 미국 제약회사 등 국내외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모아 결정된 사항이어서 되돌릴 수 없다”고 못박았다. 유시민 장관의 태도는 더 강경하다. 유 장관은 미국 협상단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과 관련해, “미국 쪽이 협상테이블을 엎어버렸다. 우리나라 제도에 대해 남(미국)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대놓고 비판했다.
복지부의 이런 태도는, 오로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듯했던 다른 정부 부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복지부는 물론 정보통신부나 농림부 등 다른 주요 부처에서도 협상할 만한 물건을 잘 내놓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애초 2차 본협상의 목표를, ‘1차 협상의 합의를 근거로 상품·섬유·농산물 분야에서는 양허안(개방허용)을 주고받고 서비스·투자 분야의 유보안(개방 불가)도 내놓는다’는 것으로 정했다. 하지만 양허안 교환은 8월로 미뤘고, 유보안도 처음 마련한 것보다 가짓수를 더 늘리면서 수준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가 “교육 분야에선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같은 테스트 시장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자, 교육부는 이번에 ‘에스에이티’를 유보안에 포함시켜 개방 불가 방침을 분명히했다.
정부 각 부처의 이런 공세적 태도가 앞으로 협상이 진행될수록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변수는 국내 여론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비판적인 보도가 나오고 반대여론이 커지면서 청와대나 정치권이 신중론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정 분야를 전체와 엮어서 관철시키려는 미국의 전략도 협상 진척의 걸림돌이다.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는 이날 2차 협상 마감 기자회견에서 “의약품 분야가 다른 의미있는 협상을 배제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약값 적정화 방안을 취소하지 않으면 전체 협상 진행이 어렵다는 얘기다. 당장 9월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복지부는 약값 적정화 방안을 9월부터 시행할 계획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3차 본협상도 9월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다. 박순빈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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