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09 18:17
수정 : 2006.10.11 15:11
사설
북한의 핵실험 강행 발표가 세계에 충격파를 일으킨 어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신임 일본 총리와 만나 북핵 문제를 포함한 공동 관심사를 두고 밀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강경우파의 색채가 뚜렷한 아베 총리는 방한에 앞서 중국을 찾아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지도부와 만나 ‘전략적 호혜관계’ 구축에 합의한 것으로 보도됐다. 중-일 관계를 지칭하는 데 전략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으로 무너졌던 일본의 동아시아 외교가 질적인 차원은 제쳐놓더라도, 복원의 모양새를 이렇게 빨리 갖추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침략전쟁 등의 역사관, 평화헌법 개정, 역사교과서 개정 문제에서 전임 총리보다 훨씬 교조적이고 수구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일, 중-일 정상회담에서 야스쿠니신사 등의 역사인식 문제가 최우선적으로 거론되지 못했던 까닭은 우선 북핵 위기로 상징되는 동북아 정세가 그만큼 긴박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이 지역에서 핵무장 도미노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주요 세 나라 수뇌간 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극우적 견해 표명을 자제하거나 일부 수정한 타협자세를 보인 점도 정상회담의 긍정적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다. 아베는 자민당 총재 경선과정에서 인정하기를 꺼렸던 1995년의 무라야마 총리 담화나 군대위안부 강제동원을 사과했던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순방 직전 계승한다고 밝혔다. 아베가 총리 취임 후 현실주의적 노선을 택한 것은 집권기반을 넓히려는 국내 정치적 고려가 강하게 작용했겠지만, 극우적 소신을 누그러뜨렸다는 점에서는 평가해줄 부분이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세 나라 지도부 대화통로가 일단 열렸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다. 한-일-중 세 나라가 이 지역의 장기적 안정과 번영을 위해 미래지향적 관계를 열어나가려면 올바른 역사인식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노 대통령과 아베가 정상회담을 마친 뒤 따로 기자회견을 한 것은 과거사에 대한 이견을 크게 좁히지 못했다는 방증이 된다. 이번 한-일, 중-일 정상회담은 역사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봉합에 불과하다. 누구보다도 아베 총리 자신이 역사인식에 대한 모호한 처신의 효과가 오래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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