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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09 18:16 수정 : 2006.10.11 15:11

사설

북한이 어제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일 핵실험 계획을 밝힌 지 엿새 만이다. 그 사이에 6자 회담 참가국인 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물론이고 유엔 안보리도 의장성명을 통해 핵실험 계획 포기를 촉구했다. 북한은 이런 모든 경고를 무시했다. 국제사회의 요구에는 귀를 닫고 자신의 일정표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이번 핵실험은 지난해 9·19 공동성명과 1991년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위배된다. 북한은 도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인정받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좀더 나은 위치에 설 수 있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또는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의 하나로 금융제재를 강화한다고 보고 ‘갈 데까지 가보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모두 오판이다.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대북 정책을 크게 바꾼다는 가정도 비현실적이려니와 핵실험은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켜 북한 경제에도 많은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압박이 강화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내부 결속이 주요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핵실험을 택한 것은 북한 지도부의 심각한 판단력 결함을 보여준다.

이번 핵실험의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당장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긴장이 높아질 것이다. 북한은 방어용·자위용으로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주장하지만 주변국들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무너지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지역에서 핵 개발을 포함한 군비강화 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 세계가 걱정하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약화 또는 붕괴다.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은 21세기 지구촌 안보의 최대 위협 요인이다. 이번 핵실험은 북한을 그런 위협의 한 주체로 좀더 구체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한반도 위기의 시작인가

이번 핵실험이 새로운 한반도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1990년대 초반 1차 북핵 위기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시작됐다. 당시 미국 정부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 계획을 검토했다. 전쟁 발발 직전 상황까지 치달은 것이다. 2002년 가을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 계획을 둘러싸고 시작된 2차 북핵 위기 때도 미국에선 북한 핵시설 공격론이 불거졌다. 이번에도 미국내 강경파들이 비슷한 주장을 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북한에 대한 국제 여론도 과거 어느 때보다 나빠진 상태다. 그간 북한 쪽에 서온 중국조차 지난 7월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로는 중립적 태도로 바뀌고 있다.

위기의 확산은 우리에게 최악의 악몽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우선 돌발적 행동으로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개별국 차원의 섣부른 대응보다는 국제사회의 중지를 모아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이유다. 특히 1·2차 북핵 위기 때와 같은 북한 공격론이 미국이나 일본 안에서 무책임하게 거론되지 않도록 협조를 강화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냉철해야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서 외교적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북한 핵문제는 결국 외교적·평화적인 방법으로 풀 수밖에 없다. 북한의 오판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하더라도 북한 역시 다른 나라와의 무력 대결을 바라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지난 한해 동안 북한이 벌인 도발적 행위는 하나같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해제를 겨냥하고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과의 직접대화 역시 미국의 입을 통해 체제 보장을 확인받으려는 의도가 강하다.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악의적 무시가 되풀이되는 지금 같은 상황을 극복하려면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도록 애써야 한다. 6자 회담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기본 틀에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남북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시기상조다. 물론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상 남북 관계가 과거와 똑같이 진행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급격한 위축은 무조건적인 민족공조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특히 남북 경협은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줄이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데 필수적이다. 끊기는 쉬우나 다시 구축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남북 관계다.

이번 핵실험은 지난 10여년 진행돼 온 북한 핵문제에서 한 정점을 이룬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한반도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행태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고 관련국들의 이해관계도 복잡한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할 필요가 있지만, 성급한 대응은 금물이다.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과거 어느때보다도 냉철하고 현실적인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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