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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0 18:40 수정 : 2006.10.11 15:10

사설

북한 핵실험의 파장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앞으로 북한과 관련국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최악의 경우는 강경대응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시나리오다. 지금처럼 교착상태에서 계속 조금씩 긴장이 높아지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최악은 아니지만, 한쪽이 굴복하지 않는 한 타협이 불가능할 정도로 틈이 벌어져 결국 파국으로 이어지기 쉽다. 북한과 미국 모두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역시 피해야 할 선택이다.

바람직한 경우는 위기가 더 진전되기 전에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 타협하는 것이다. 지금 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다. 물론 당장은 북한의 도발적인 핵실험 강행으로 관련국들의 감정이 격앙된데다 북한 또한 상식을 벗어난 주장을 펴고 있어 타협 여지가 적다.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핵실험 직후 미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미국이 반세기 넘게 추구해 온 대북 적대정책에 대한 대응”이라며 “유엔 안보리가 쓸모없는 결의나 의장성명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핵실험 성공을 축하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북한은 허장성세를 중단하고 갈수록 고립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행정부는 비교적 차분한 편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대북 성명에서,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유엔 안보리의 즉각적 대응을 요구하면서도 외교적 해법과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강조했다. 군사적 대응을 배제하고, 미국 단독 행동보다는 국제사회가 함께할 수 있는 조처를 우선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태도는 미국이 중동사태에 손발이 묶인 상태임을 감안하더라도,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 무력 대결 대신 외교적 해법이라는 기준을 분명히한 점에서 합리성을 갖는다.

‘단계적 외교 해법’으로 가야

하지만 외교적 해법도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미국이 핵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에 낸 제재 결의안 초안은 북한의 대외 금융거래를 사실상 중단시키고 북한을 출입하는 핵 등 대량살상무기 의심 선박을 해상에서 검문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또 유엔헌장 제7장을 근거로 삼고 있어 군사적 제재까지 동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해상봉쇄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이런 제재는 북한의 잘못을 깨닫게 하고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기보다 상황을 급격히 악화시켜 외교적 해법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결의안에 제재 조처를 담더라도 그 내용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이유다. 모든 나라가 합의할 수 있는 낮은 단계의 결의안을 채택한 뒤 일정 기간 북한의 행동을 지켜보고 다음 조처를 논의하는 단계적 해법으로 가야 한다.

한국은 국제 공조에 동참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화 가능성을 높이는 독자적 구실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조지 부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한과 미국이 먼저 나서서 회담 테이블에 앉은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지난해 대북 ‘중대 제안’을 디딤돌 삼아 6자 회담 재개와 9·19 공동성명을 유도한 것도 우리나라였다. 한국의 주도권은 올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설이 나돌 때부터 강화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국내외 강경파의 눈치를 보느라 시기를 놓쳤고, 따라서 북한의 이번 핵실험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무책임하다.

유지해야 할 대북 화해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도 초점이 어긋났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포용정책은 대북 화해와 협력을 통해 남북 교류를 확대하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간접 지원해 평화통일 기반을 넓히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런 정책이 북한 핵실험을 유발했다는 야당 등의 주장은 포용정책을 대북 만병통치약으로 잘못 이해했거나 정치 공세를 위해 왜곡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최근 남북 관계를 정치·군사 수준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경협과 교류에서 포용정책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한 이후 지금처럼 혼란 없이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것도 포용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성급하다. 개성공단이 북쪽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한해 수십억원에 불과하지만 이 사업이 남북간 긴장 완화와 경제 교류에 기여하는 가치는 훨씬 크다.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단 북쪽으로 물러난 북한군이 다시 휴전선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조차 생각지 못하는 단견이다. 핵실험으로 경협과 민간 교류가 위축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조처를 취하는 것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지금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남북 관계를 단절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핵실험이라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제재를 넘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상을 꾸준히 실천해나가려는 노력은 겨레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차원에서도 중단돼선 안 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현실 추수가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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