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0 18:53
수정 : 2006.10.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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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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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정의는 실현돼야 할 뿐 아니라, 실현되고 있음이 보여야 한다.”
재판의 공정성을 강조할 때 자주 쓰는 영국 법원의 판례다. 법관 스스로 공정성을 확신하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객관적으로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 전세계에 던진 메시지가 꼭 그렇다. 지난 10여년의 핵 위협이 단순 엄포가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세계에 증명한 것이다. 핵보유 선언 이후에도 긴가민가했던 북한의 핵 능력이 현재적 위협이라는 점을 이젠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북한으로선 이 점을 핵실험 자체보다 더 ‘성공적’이라고 자평할지 모를 일이다.
미국 정보당국과 일부 언론은 폭발 규모가 너무 작다며 핵실험 성공에 의문을 던진다. 다른 폭발장치를 핵실험으로 위장했다는 추정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한단계씩 진전시켜 왔다. 다소 미흡한 수준일진 모르나 날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나아가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쏜 뒤 곧바로 핵실험을 강행했다. 실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지, 핵탄두 탑재 능력은 있는지 불확실하지만, 미사일과 핵이 있으니 ‘언제든 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기엔 부족함이 없다.
북한의 핵실험이 국내용인지 협상용인지, 아니면 실제 핵무장을 목표로 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명확한 건, ‘서울 불바다’ 발언과 같은 유치한 ‘공갈 게임’이나, 초보적 수준의 실패로 끝난 미사일 발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국제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금지선(레드라인)을 보란듯이 침범해 놓고,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 기득권을 인정받거나 핵 협상에서 유리한 쪽에 설 것으로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마지막 카드를 섣부른 모험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미국과 일본은 군사적 제재 길을 열어놓은 유엔의 대북 결의안을 추진 중이다. 대량살상 무기 확산을 막겠다며 북한의 돈줄을 완전히 죄고 공해상에서 북한 배들을 마구 뒤질지도 모른다. 이에 북한이 추가 핵실험 등으로 맞대응하면 위기는 아주 쉽게 고조될 수 있다.
고강도 제재는 과거에도 북한의 태도를 바꾸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북한은 사실상 경제봉쇄와 다름없는 ‘고난의 행군’을 적잖이 경험했다. 마지막 카드를 던진 마당에 웬만한 제재와 압박이 통할 리 없다. 그렇다고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처럼 미국이 독단적인 군사 행동을 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위기가 고조될수록 문제는 단순해진다. 압박이 통하지 않고 무력도 용납할 수 없다면, 어찌 됐건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절제되고 침착한 대응’을 언급했다. 외교 정책의 실패를 비판하는 민주당과 중간선거 등을 의식했다지만 예상외로 차분한 태도다. 지금까지의 무시·배제 전략을 수정할지는 불투명하지만, 위기를 증폭시키지 않는 것만도 다행스런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말마따나 우리 정부도 “대화만 계속하자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우리의 발언권과 자율성도 상당히 위축될 것이다. 그러나 단호한 대응이 대화 단절로 흐른다면 우리가 할 일은 더더욱 없다. 대북 포용정책 전체를 부정하거나 핵폭탄이 곧 터질 것처럼 안보 위험을 부추기는 극단적 분위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은 지금부터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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