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0 19:00
수정 : 2006.10.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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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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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한이 핵실험을 시작했다. 얻을 것 없는 6자 회담의 난파를 공식화하고 아홉번째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마주앉을 새판을 짜려는 ‘선군 외교’가 그 선을 넘었다. 그런데 중국마저 등을 돌리는 지금 시점에서 자살골이 될 수도 있는 핵실험을 북한이 강행하는 배경에는 핵실험만으로는 미국이 군사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유엔 제재라는 당장의 고비만 넘기면 ‘핵 보유국 조선’이 한반도 국제정치의 주빈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선제공격이 쉽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특히 북한 문제와 닮은꼴로 진행 중인 이란에 대한 워싱턴의 태도 변화도 북한의 자신감을 굳히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미국은 몇 달 전부터 이란 핵문제의 군사적 해결 가능성을 일단 접었다. 이라크 때문에 지상군 여유 전투력이 고갈되는 바람에 당장 가능한 선제공격이 공습뿐인 현실, 또 첨단 무기만 믿고 지상군 규모를 줄였다가 장기전의 수렁에 빠진 ‘이라크의 교훈’이 작용한 탓이다. 합참도 충분한 지상군 투입 없는 공습 위주의 이란 공격 계획에는 강하게 반대해 왔다.
또 중부군 사령부는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이 중동의 친미 국가에 대한 전면 보복과 헤즈볼라의 대규모 공세를 촉발하여 이라크 정세마저 결정적으로 악화시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워싱턴 이란정책의 실무 축이 국방부의 이란정책실과 딕 체니 부통령의 딸인 국무부 근동 담당 차관보로 이어지는 강경 라인에서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차관 쪽으로 기울고 있는 배경, 또 로버트 조지프 차관이나 존 볼턴 유엔대사와 같은 국무부 내의 강경파가 이란 문제에서 배제된 배경은 이것이다.
북한은 어떤가? 산악 지형도 문제지만 용산기지와 서울을 북한이 직접 겨냥한 상황에서 대북한 공격은 이란만큼 부담스럽다. 특히 워싱턴 군사전문가들은 대북 선제공격 때 북한이 용산 기지 주변까지 보복 포격하고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대남 선전을 활용할 가능성까지 우려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동북아의 세력 구조상 미국의 즉각적인 대북 공격은 어렵다. 미국이 양자 대화에 응하든 말든, 북-미 대결의 새판을 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배경에는 이런 확신이 있다.
그러나 이란 문제와 달리 워싱턴 대북정책은 어느 한쪽으로 미리 기울 수 없다. 게다가 북한 핵실험 이후 워싱턴에서 대북 협상 목소리가 커진다 해도 협상파의 운신 폭은 역설적으로 좁아진다. 특히 미국도 북한처럼 ‘시간 벌기용’ 협상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김씨 정권’(Kim’s Family Regime, KFR)으로 부르는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누가 정권을 잡든 워싱턴의 대북정책은 현실주의보다는 미국 특유의 도덕주의로 그 최종 결말을 좌우할 것이다.
길게 끌지만 않으면, 일단 시작된 미국의 모든 전쟁에는 지지파와 반대파가 따로 없었다. 또 북한의 핵 보유 자체보다 그 확산 가능성을 더 절체절명의 문제로 보는 미국의 안보강박증은 불행하게도 ‘북한의 길’을 모델 삼아 이란이 그 뒤를 따르도록 허용할 여유가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한국 외교의 20년 공든 탑을 한 방에 날려보낸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배신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유엔 제재 이외의 응징 방책이 없는 미국이지만, 고종이 순진하게 미국을 오판한 이후 한반도 역사의 고비마다 되풀이된 ‘미국 오판’의 결정판으로 역사에 기록될까 더 두려운 것이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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