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어려울 듯..북 위기 1990년대 중반보다 호전
식량상황 호전되고 정치권력도 공백없이 공고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1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1990년대 중반 국제사회를 휩쓸었던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핵무기를 개발하면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의 생존조건이 심각한 상황을 맞을 것"이라며 붕괴론을 언급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개발에 맞서 제재를 강화하면 북한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결국 북한 김정일 정권은 붕괴할 것이라는 논리.
과연 핵실험의 후폭풍으로 초래되는 제재를 통해 북한은 붕괴할 것인가.
일단 유엔의 대북결의안을 통해 만들어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그동안 북한이 경험했던 제재조치에 비해 강도가 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에 도움을 주었던 중국과 남한이 이번 제재에 동참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점은 제재로 인해 북한이 겪을 경제적 어려움을 짐작케 한다.
또 이미 대북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모든 북한선박의 입항금지 ▲모든 북한상품의 수입 금지 ▲북한 국적자의 입국 금지 등의 추가적 제재를 취함으로써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와 북한의 연결고리를 끊고 자금을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단체들도 대북지원을 위한 모금에 차질을 초래하고 앞으로 그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점도 북한의 경제적 곤란지수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이 북한 정치체제의 붕괴로 연결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중국과 남한이 유엔의 대북결의안에 따라 제재에 나서게 되면 교역 등에서 부분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겠지만 완전한 교역 중단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가에서 대북사업을 하고 있는 주체의 대부분이 민간기업이고 이들 기업의 필요에 따라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 북한의 경제상황이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는 점도 제재로 인한 붕괴론을 예상하기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1990년대 중반 수백만의 아사자를 낳았던 '고난의 행군'시기 북한의 1년 식량생산량은 200만t 정도였지만 이제 북한의 식량생산량은 400만t까지 늘어났고 공장 가동률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다 이익보호라는 공감대 속에 똘똘 뭉친 북한의 지배계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운명공동체라는 인식 속에서 현재의 지배구도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3세계 국가의 정치적 변동이 상당부분 쿠데타 등 지배계층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북한에서는 정치적 변동을 추동해 낼만한 새로운 지배계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북한의 지배계층은 속으로는 정치에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조직화하지 않는다"며 "굳이 지배계층으로부터 탈락되는 수모를 겪을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현재의 지배구도가 가진자의 이익에 합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 등 2중, 3중의 감시망을 가진 북한사회에서 일반 주민들의 역모를 상상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한 탈북자는 "최근 동영상 등을 통해 북한에 반체제 세력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대부분 연출의 흔적이 역력하다"며 "식량사정이 어려워지고 주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면 반체제 행위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은 북한 내부를 모르는 자본주의식 분석"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최근 북한의 정치상황은 북한 붕괴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됐던 1990년대 중반보다 호전되어 있다. 9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북한이 '유훈통치'를 실시하면서 권력에서의 공백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현재는 김정일 위원장이 노동당 총비서와 군 최고사령관 및 국방위원장으로서 당과 군부를 공고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경제적으로만 봐도 북한의 내구력은 4∼5년 정도는 된다고 볼 수 있다"며 "결국 내후년이면 부시 행정부도 레임덕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철통같은 대북제재가 실현되기도 쉽지 않은 만큼 북한이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제재를 통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북한 주민들이 동요할 수도 있겠지만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도 "동구권의 붕괴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치.경제적 개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며 "미얀마처럼 수십 년간 제재를 받으면서도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사례처럼 제재가 한 국가체제 붕괴의 원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예상에도 불구하고 왜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가. 일각에서는 핵보유 등으로 인한 북한의 위협을 축소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핵보유라는 상황을 푸는 해법으로는 '군사적 방법'과 '북한과 직접협상' 등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한반도 정세상 군사적 공격이 여의치 않고 북한과 직접협상을 원치도 않는 미국과 일본에서는 곧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논리로 위기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정철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북한의 핵실험 실패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그동안의 대북 무시전략(neglect strategy)을 이어가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용훈 기자 jyh@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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