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6 07:22
수정 : 2006.10.16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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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중국 단둥 맞은 편의 북한 신의주 쪽 선착장에서 북한군 병사들과 주민들이 작은 배에 음식 등 생필품이 담긴 상자를 싣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단둥/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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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묶고 사람 막고 ‘얼어붙는 국경’
15일 북한 신의주가 코앞에 보이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의 끊어진 압록강 철교는 평소와 다름없이 관광객들로 붐볐다. 낚시하는 인민군 사병들은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었다. 음식으로 보이는 짐과 돗자리를 배에 싣고 고운 옷 입은 나들이 차림의 가족들도 보였다. 그러나 9일 북한의 핵실험 강행 이후 급랭 국면을 겪는 북-중 사이의 찬바람은 압록강을 오가며 국경무역에 종사하던 이들의 가슴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우호에 금 그은 철조망…단둥시 “대량 탈북등 최악사태 대비”
핵실험 제재 추측 속 업자들 “송금중단 장기화땐 교역 큰 타격”
단둥 교외 국경지대 철조망 작업=중국 당국은 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즉각 북-중 국경지대인 압록강변에 철조망 설치를 서두른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지금까지 북-중 사이에는 우호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철조망 등 월경 방지시설을 거의 설치하지 않았다.
중국 단둥시 동북쪽 20㎞ 지점의 후산장성과 위화도의 북쪽 퇴적평야가 서로 이마를 맞대는 지점은 강폭이 1.5~ 정도로 좁다. 걸어서 국경을 넘을 수도 있는 곳이다. 경계근무를 서던 북한 인민군 병사 한 명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주민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며 한담을 나눴다. 하지만 앞으로는 철조망이 가로지르는 삼엄한 국경지대로 변할지도 모른다.
이 지역 주민들은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 당국이 군 병력을 투입해 강심이 얕고 강폭이 좁은 곳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녹슨 흔적이 전혀 없이 은색으로 빛나는 후산장성 부근의 이 철조망들은 이 시설물이 최근에 설치됐음을 말해준다.
단둥시의 한 관계자는 이날 이 시설물이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설치됐음을 인정했다. 그는 “핵실험 이후 대북 경제제재 등으로 북한의 경제난이 가중되면 북한 인민의 대량 탈북사태 등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 대비책의 하나로 이 시설물을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중 송금중단 수수께끼=북-중 국경무역이 가장 활발한 도시인 단둥에선 또다른 의문의 사태가 벌어졌다. 13일 은행에서 대북한 업무를 중단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북한의 광산업에 투자해 10년 이상 평양과 거래해온 중국인 황아무개(35)는 15일 “평양에서 광산업 관련 설비 대금 2만달러를 송금하려 했으나 중국의 거래 은행이 접수를 거부했다”며 “은행 쪽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다만 13일 오전 8시를 기해 거래를 중단한다고만 밝혔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의류를 가공한 뒤 중국 상표를 붙여 유럽에 수출해온 중국인 추아무개(36)도 같은 증언을 했다. 추는 평양에 있는 사무실의 회계관리자에게 중국의 거래 은행 관계자로부터 구두로 “북-중 외환거래가 당분간 끊어진다”는 통보가 왔다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단둥을 통해 북한과 무역사업을 해온 한 한국인 기업가도 이날 “단둥에서 북한으로 송금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대북 무역에 종사해온 이들은 자오상은행·중국은행 등 중국의 은행을 통해 고려은행·대외무역은행 등 북한의 은행과 인민폐로 거래를 해왔다. 이날 단둥 지역에서는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처를 내린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단둥시에서 대외무역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이날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위해 금융거래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며, “중국 당국이 북한에 ‘교훈’을 주기 위해 일시적이고 비공식적인 조처로 금융거래를 중단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의 대외무역 총액 30억100만달러 중 중국과의 교역이 15억8000만달러로 절반을 넘는다. 단둥시의 경우 북한과의 교역량은 매년 2억달러 정도이다. 단둥시의 무역통계에 잡히지 않는 적지 않은 대북 사업자들이 단둥을 거쳐 물자를 북한에 들여보내거나 거래를 하고 있다.
단둥시의 다른 대북무역 종사자는 이날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서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체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행동해 북-중 관계가 한동안 냉각기를 겪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단둥/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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