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북한 핵과 햇볕정책’이란 주제로 서울대 개교 60주년 기념 초청 특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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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서울대에서 ‘북핵 강연’
“경제 제재는 고통 주겠지만 북한 굴복 못시켜”“6·15 이전이었으면 핵실험뒤 피난소동 났을 것” “서독이 동독에 32억달러를 줬지만 동독이 더 강해졌나? 망했다. 우린 이제 1억달러를 줬을 뿐이다. 퍼준다고 말하는데, 같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북한 사람이 죽어가는데 좀 도와주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배 아파 해야 하느냐?” 북 핵실험 이후 행보가 바빠지고 목소리도 커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일 서울대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또 한번 햇볕정책의 연장선에 선 북핵 사태 타개책을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의 해법과 그 현실성에 나라 안팎의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이날 서울대 강연도 학생들의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부터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북한 핵과 햇볕정책’이란 주제로 강연하며 “북한 핵실험은 1991년 12월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정면으로 위배되는만큼 우리의 법적 권리로서 북한 핵 폐기를 다시 한번 단호히 요구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현 사태는 북한과 미국의 공동책임”이라며 “북한은 핵실험 이후에도 북-미 양자 대화를 통해 그들의 안전을 보장받고 (미국이)경제제재를 해제하면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면한 해법으로 북한의 핵 완전폐기와 미국의 안전보장, 대북수교를 내세웠다. 김 전 대통령은 애초 ‘21세기의 도전과 한국의 선택’이란 제목으로 강연할 예정이었으나, 급히 주제를 바꿔 특강을 준비했다. 특히 그는 햇볕정책의 공과를 언급하는 대목에선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6·15 남북 정상회담 이전 같았으면 핵실험 뒤 남한에 일대 공포 분위기가 일어나고 피난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여기 학생들도 지금 이렇게 안도하고 있는 건 햇볕정책 덕”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대북 포용정책이 막상 북한의 정치·군사 영역에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이철호(사범대 사회교육계열 1년)씨의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은 “직접적인 변화는 꾀하지 못했지만 (북의)민심은 적대감에서 부러움과 감사로 크게 바뀌었고, 남쪽의 비료 포대가 북에선 쇼핑백으로, 깨진 유리창 덮개로도 쓰이고 있다”며 북한 사회 전반이 변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는 대북 경제제재론에 대해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통해 경제적 시련에는 익숙해져 있다”며, 경제제재가 2차 핵실험이나 휴전선에서의 도발 등 되레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을 지적했다. 미국에서 먼저 제기된 금강산관광 중단론에 대해서도 날선 의견을 내놨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을 위시해 북한에서 거대한 경제적 이권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는) 휴전선이 그만큼 북쪽으로 올라간 것을 의미한다”고 비유했다. 그는 서울대 학생들에게 “통일 없이는 민족의 미래가 없다”며 “자주독립 의식을 견지하면서 정교한 강대국 외교를 실천하는, 외교의 천재가 되는 국민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오후 4시부터 1시간15분 동안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250석 규모의 문화관 중강당은 좌석 통로까지 학생들로 빈틈없이 메워져 200여명이 선 채로 강연을 들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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