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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2 19:33 수정 : 2006.11.02 19:33

한승동의 동서횡단

미국은 왜 북한이 거의 애걸하다시피 하고 있는데도 수교를 거부할까? 수교한 북한이 미국과의 대결을 불사하면서까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지금 문제삼고 있는 핵심 사안들이 일거에 해소될 수 있다. 네오콘들의 욕심대로라면, 잘하면 남한보다 땅덩이가 더 큰 북한이라는 ‘골치아픈’ 지정학적 요충지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아닌가. 수다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포함한 모든 정황들을 따져보건대 최근 북한이 미국과의 수교를 국가와 체제 생존의 유력한 돌파구로 여기고 있다는 건 거의 의심할 바 없어 보인다. 심지어 최근의 핵실험조차 미국이 북한과의 수교교섭에 눈을 돌리지 않고는 못배기게 할 마지막 비책으로 감행했다는 설이 파다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미국은 어떻게 하면 북한과의 수교를 피할지 갖은 묘수를 동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한반도에 힘의 공백이 생기면 동아시아 전체가 위험해진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한반도가 일본열도를 겨눈 비수라는 일본 우익들의 유구한 합창은 실로 뻔뻔하다. 그런 식이라면 세계의 모든 나라는 이웃끼리 서로에게 비수이며 이웃은 오로지 서로 잡아먹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어쨌든 청일전쟁이 나고 러일전쟁이 벌어진 것도 공백상태의 한반도를 차지하려던 열강들의 이전투구였다. 2차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 반반씩 차지하기로 공모한 것도 같은 이치였다.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힘이 없어 어깨들에게 마당을 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기왕이면 저 멀리 바다 건너 가장 힘세고 잘 사는 미국에 내주는 게 현명한 것 아니냐, 이런 구제불능의 패배주의를 선창하는 세력이 있다.

고조선 이래 한민족의 거주공간과 활동무대가 지금처럼 졸아든 적은 없었다. 북쪽은 고립속에 굶어죽어가고 있고 남쪽은 대륙을 완전히 상실한 채 동족과 적대하는 외세의 기지노릇을 하고 있다. 한민족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갉아먹는 이런 분단과 대결상황 자체가 이를 통해 득을 보고 있는 주변 열강들에 비해 상대적인 힘의 공백상태를 만들고 다시 그들이 개입하는 악순환의 원천이다. 이런 구조를 만든 자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건 패배주의의 극치다.

지난달 말 <재팬 포커스>에 실린 윌리엄 잉덜의 ‘대국 러시아의 등장: 미국, 유라시아, 그리고 글로벌 지정학’은 미국이 라이벌들에 대한 절대적 핵 우위 확보에 얼마나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사일방어(MD)구상을 강행하고 우주까지 군사화하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확대하고 이라크 침공 등 중동개입을 강화하고 미일동맹을 확대하는 것 따위가 그것과 맥을 같이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러시아·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이런 공세적 헤게모니 추구 때문일 것이라고 잉덜은 지적한다.

세계 최대영토에다 최대 자원보유국 러시아가 물론 그냥 있을 리 없다. 중국·중앙아시아국들과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만들고, 인도와 이란을 끌어들이고 북핵사태에도 개입한다. 군사와 에너지를 매개로 한 그런 협력관계들은 여차하면 미국 핵 우위에 도전하는 연합전선으로 전환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 수교할 경우, 결국 미군은 한반도에서 떠날 수밖에 없는 딜렘마에 빠질 것이다. 주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남한이 중국과의 대결을 불사하며 전략적 유연성까지 확보한 미군 주둔을 언제까지나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한반도에서 미군이 떠나면 주일미군도 떠나야 한다. 중국 한국 러시아를 가상적으로 한 미군 주둔 허용이 초래할 아시아로부터의 적대적 고립을 장기간 감내할 정도로 일본 사회와 정치가 아둔하진 않을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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