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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5 20:17 수정 : 2006.11.05 20:17

지난달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군이 랴오닝성 단둥 후산장성 부근에 설치한 철조망 너머로 북한 국경초소에서 근무를 서던 군인들이 중국쪽을 바라보고 있다. 새로 설치된 철조망의 은빛 가시가 핵실험 이후 냉랭해진 북-중 관계를 상징한다. 단둥/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북핵실험 이후, 중국 민심 들어보니
정부 강경태도에 심각성 각인
북 꾸짖는가하면 동정론도 솔솔

“핵무기를 갖는 것은 조선(북한)의 권리다. 미국, 러시아, 중국도 갖고 있는데, 조선은 왜 안 된단 말인가?”

“집에서 개를 기를 순 있다. 하지만 개 짖는 소리가 이웃에 큰 불편을 준다면 이 개를 길러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중국 최대의 블로그 사이트 ‘보커 중궈’(블로그 중국)에 뜬 글의 일부다. 이 글을 쓴 왕웨이는 “지난 주말 근처 상점을 지나다 바둑을 두는 노인들의 북핵 토론을 들었다”며 “그들의 대화 속에서 조선의 핵실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고 썼다. 그가 이 글에 붙인 제목은 ‘조선 핵실험,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다.

북한 핵문제를 놓고 중국의 민심이 시끄럽다. 북핵 문제에 대체로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던 중국 사람들이 핵실험 이후엔 갖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과 미국, 중국의 비밀 회동으로 6자 회담이 다시 열리게 된 데 대해서도 이런저런 전망을 주고받으며 열을 낸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전개된 급박한 정세가 중국 사람들에게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각성제가 된 듯하다.

북한 핵실험 직후엔 북한을 꾸짖는 목소리가 컸다. “왜 우리를 골치 아프게 하냐”는 볼멘소리가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역성을 눌렀다. 심지어 “조선이 핵폭탄을 중국에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위협론마저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북한이 전격적으로 6자 회담 복귀를 선언한 뒤엔 “그래도 조선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북핵 문제가 중국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양상이다.

베이징 시내 왕푸징에서 만난 한 남자는 요즘엔 북핵 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그는 “조선의 핵실험에 한 번 놀랐고, 6자 회담 재개 소식에 두 번 놀랐다”며 “조선 핵문제에 이렇게 신경이 쓰인 적이 예전엔 없었다”고 말했다. 3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는 한 운전사도 “한국인을 태우면 꼭 조선 핵문제를 물어본다”고 말했다.

중국 사람들이 북핵 문제에 이처럼 예민해진 이유는 역시 북한의 핵실험 때문이다. 핵무기란 말이 주는 공포가 닫혀 있던 말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중국 정부가 북한 핵실험 직후 ‘적절한 징계’를 공언하며, 이전과 달리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도 이들의 무신경에 균열을 일으켰다. 중국 신문에 한반도 관련 글을 쓴다는 짜오란(32)은 “조선을 옹호해왔던 중국 정부가 다른 태도를 보이자, 중국 사람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선 여전히 눈길이 차갑다. 보험회사에 다닌다는 한 남자는 “중국의 형제인 조선이 강해지기를 바라지만, 중국 주변에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많아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중국이 호랑이를 키워 물리는 꼴이 돼선 결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다롄민족학원에 다닌다는 한 학생은 “북한도 먹히지 않으려면 무언가 조처를 취해야 하지만 핵무기 제조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족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국적상 엄연한 중국인이지만, 가족의 뿌리가 북한에 닿는 이들은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면 북한 주민들의 삶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진밍화(23)는 “부유하고 안정된 조선은 낙후하고 불안한 조선보다 모두에게 유리하다”며 “중국 친구들이 조선을 욕할 때마다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6자 회담 재개 소식이 전해진 뒤엔 북한의 처지에 동정을 표시하는 여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중국 최대의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의 북핵 토론방에 참여한 한 누리꾼은 “조선의 입장에선 미국한테 맞아죽거나 금융제재 때문에 굶어죽거나 마찬가지”라며 “잘못을 탓하자면 미국을 탓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항미원조(미국에 반대하고 조선을 돕는다는 뜻으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말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중국과 조선의 우정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조선은 비록 가난하고 거칠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우여곡절 ‘북-중 관계’ 어디로?

지난달 12일 북-중 국경지대인 단둥시 후산장성 부근에서 나들이 나온 중국인들이 북한 땅이 코앞에 보이는 끊어진 나무 위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이 차가워지고 있다. 단둥/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북-중 관계는 흔히 ‘혈맹’이니 ‘순망치한의 관계’로 불리지만, 그 역사를 보면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특히 냉전시기에 부침이 컸다. 이 시기 북-중 관계는 북-중-러(옛소련)의 3각 구도 속에서 움직였다. 1961년 상호방위조약으로 전략적 군사동맹을 맺었던 북-중 관계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둘러싼 노선 갈등으로 찬바람을 맞았다. 1980년대 들어 전통적 우호관계를 회복했지만, 중국의 개혁개방과 북한의 폐쇄정책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92년 한-중 수교는 북-중 관계의 이런 변화를 재촉했다.

그럼에도 북-중 관계는 1999년 이후 급속도로 회복됐다.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의 방중을 계기로 양국은 이전 관계를 복원했다. 북-중 관계는 2001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과, 그해 9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으로 절정을 맞는다.

북핵 문제는 북-중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북한 체제 전환 압박에 맞서 중국은 북한 체제의 존속을 지원했고, 북한은 이런 중국을 방패삼아 미국의 공세를 버텨냈다. 그러나 한편으론, 북한의 위기 고조 정책과 미국의 강경일변도 대북 압박에 대한 중국의 고민도 깊어갔다.

북한 핵실험은 이런 갈등 요인을 폭발시켰다. 북한이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하고,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하면서 양국 간의 온도는 피부로 느낄 정도로 썰렁해졌다. 북-중 관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관측이 쏟아졌다. 중국은 최근 북-중-미 3자 비밀회동을 주도함으로써 다시 북핵 문제에서 중재자의 위치를 확인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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